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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강문호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경주사학회 경주사학 慶州史學 第41輯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31 - 5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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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南朝帝王의 불교 관련 제반 행사 및 조치 등을 몇 개의 항목으로 나눠 그 개략적 내용을 개설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가장 먼저 언급했던 문제는 남조 제왕과 ‘八關齋’의 봉행에 관해서이다. 당시 제왕 중심으로 종종 팔관재를 거행했던 주된 목적은 바로 백성들의 악행을 막고 선행을 하도록 교화하여 태평성세를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남조 제왕들은 또 종종 四部無遮大會혹은 無礙法善會등을 개최하곤 했다.
그렇지만 남조 제왕들이 거행했던 법회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은 종종 다른 齋會중에 곁들여 행해졌던 懺悔法會였다. 참회법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제왕을 비롯한 佛子들의 ‘捨身’ 의식이 행해졌다. 이른바 제왕의 ‘捨身’이란 그들이 승려들을 위해 奴役을 한다는 의미였다. 제왕의 ‘捨身’으로 群臣들은 불가피하게 贖錢을 내고 비굴한 자세로 승려들에게 간청하여 환속시켜야만 했다.
남조 제왕의 불교에 대한 向往은 佛寺佛塔의 건립 및 佛像조형의 형태로도 나타났다. 제왕들의 佛寺조영 목적은 공덕을 세우거나 亡人의 명복을 빌기 위한 것이 많았다고 하지만 그 조영에 필요한 비용은 백성들에게 시주를 강요하든가 臣僚들에게 압력을 넣어 갹출한 돈으로 이뤄졌던 듯하다.
남조 불교의 흥륭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로 승려의 숫적 증가와 더불어 정치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그 중 가장 먼저 제기된 정치적 논란이 바로 승려의 황제에 대한 ‘禮敬’문제였다. 이 禮敬문제는 정치논쟁으로 비화하면서 東晋南朝를 거쳐 隋唐代까지 계속 이어졌다.
불교의 흥륭과 더불어 나타났던 승려들의 政治干與또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승려들의 干政문제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이 비구니들의 활동이다. 남조의 후궁과 비빈 대부분이 불교 신자였기 때문에 비구니들의 宮禁출입이 빈번해지면서 그들의 정치간여가 발생했던 것이다.
승려들의 정치 간여 및 사회적 혼란 조성이 체제 안정에 큰 위협이 되었음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그들을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시행되었던 것이 바로 僧官制度였다. 이들 승관의 직무는 승려들의 기강확립과 더불어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訟事를 관장하는 것이었다고 보인다. 그러나 승관 중심의 승려 비행 통제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종종 더 강력한 조치가 모색되었던바 그 중 하나가 바로 비행을 저지른 승려를 沙汰시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비구니들이 宮掖에 드나들며 비빈 후 궁들과 왕래하였던 까닭에 승려 沙汰도 그 시행 자체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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