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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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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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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조선 건국 이래 500여년간 특별한 위상의 ‘수도’였던 漢城府는 1910년 강제병 합으로 제국 일본의 지방도시 京城府로 격하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은 물론 식민 지권력이나 일본인도 경성부를 단지 지방도시로 인식한 것은 아니다. 식민지시 기 내내 경성부는 지방도시이면서 식민지 ‘수도’로 이중적으로 인식되었다. 이 논 문은 이런 이중적 인식의 흐름을 경성부의 최고 행정관인 府尹의 지위 및 경성부 조직 체계의 변화 과정을 통해 추적한 연구이다.
    병합후 공포된 최초의 관제에서 경성부윤은 다른 부윤 및 군수와 동일하게 단 지 奏任官으로 규정되었다. 이전과 같은 수도 행정의 장관으로서 특별한 지위를 잃은 것이다. 또 경성부의 조직 체계도 수도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단순했다. 그 런데 이런 부윤의 지위나 부 행정의 체계가 경성부의 위상과 맞지 않으므로 경성 부에는 다른 부와 다른 일본 본국의 市에 준하는 ‘특별부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가 지속되었다. 그 결과 1932년 일제는 경성부윤의 지위를 다른 부윤보 다 높은, 도지사급의 勅任官으로 승격시켰다. 또 경성부의 행정 체계도 상위 행 정구획인 도와 같은 급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는 형식적 변화였을 뿐이다. 원래 경성부에 특별부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의 핵심은 자치제의 확대였다. 그러나 1932년 이후 경성부의 위상 변화 는 단지 위계적 질서에서 한 단계 높아진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는 자치제 확 대와는 오히려 반대로 관치가 심화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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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8-911-000809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