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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조선시대 의빈은 공주 또는 옹주와 혼인한 왕의 사위로서, 이들에게는 왕실 구성원으로서 기대되는 역할이 있었다. 특히 이들은 혈연이 아닌 혼인관계로 형성된 왕실 구성원으로서, 그 존재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은 배우자가 왕녀라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빈의 아들은 왕의 가장 가까운 異姓後孫으로서 돈녕부 종7·8품직을 初職으로 제수 받아 入仕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는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예우 아래에서 의빈의 아들은 대부분 관직에 진출하였고 그 중에서도 公主子는 10명 중 7명이 당상관에까지 이르렀다. 翁主子는 公主子와 비교해 보았을 때 참봉 등과 같은 말단직이나 특수 兵種에 배속된 경우도 상당수 확인되므로 公主子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직에 머물렀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翁主子들 중 왕의 외손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관직에 제수되어 비판의 여론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으므로 이들 역시 왕실 이성후손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혜택을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의빈은 배우자인 왕녀가 자녀를 두지 못하고 사망하였을 경우에도 여전히 의빈의 위치에 있었다. 이들에게 再婚은 허락되지 않았다. 의빈의 재혼은 공주의 제사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공주 奉祀와 관련한 문제, 즉 왕실의 위상 및 재산 상속 등의 이유 때문에 의빈은 재혼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이들에게 嫡妻가 아닌 妾을 두는 것은 허락되었다. 결국 의빈이 왕녀 사후에 새 배우자를 맞는 것은 ‘합법적인 혼인’이 아닌 ‘作妾 내지는 取妾’으로 보았던 것이다.
의빈이 왕녀 이외의 배우자를 얻는 경우에는 그가 士族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모두 妾으로 인정되었다. 의빈의 後娶 중에 士族 출신의 여자들은 자신과 자녀의 嫡室·嫡子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고자 했지만, 모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한 점은 의빈 후취 자녀들의 관직 및 혼인 상황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결국, 의빈에게는 王女 이외의 배우자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것은 결국 嫡妾의 분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당시에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공주나 옹주가 의빈의 유일한 嫡妻라는 지위를 분명히 하는 조처였다고 판단된다.
일반적으로 의빈의 아들은 왕의 가장 가까운 異姓後孫으로서 돈녕부 종7·8품직을 初職으로 제수 받아 入仕할 수 있는 혜택을 누리는 존재들이었다. 이러한 예우 아래에서 의빈의 아들은 대부분 관직에 진출하였고 그 중에서도 公主子는 10명 중 7명이 당상관에까지 이르렀다. 翁主子는 公主子와 비교해 보았을 때 참봉 등과 같은 말단직이나 특수 兵種에 배속된 경우도 상당수 확인되므로 公主子보다는 상대적으로 낮은 관직에 머물렀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翁主子들 중 왕의 외손이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보다 높은 관직에 제수되어 비판의 여론이 일어난 경우도 있었으므로 이들 역시 왕실 이성후손으로서의 보이지 않는 혜택을 누리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의빈은 배우자인 왕녀가 자녀를 두지 못하고 사망하였을 경우에도 여전히 의빈의 위치에 있었다. 이들에게 再婚은 허락되지 않았다. 의빈의 재혼은 공주의 제사와 직결되는 문제였으므로 공주 奉祀와 관련한 문제, 즉 왕실의 위상 및 재산 상속 등의 이유 때문에 의빈은 재혼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이들에게 嫡妻가 아닌 妾을 두는 것은 허락되었다. 결국 의빈이 왕녀 사후에 새 배우자를 맞는 것은 ‘합법적인 혼인’이 아닌 ‘作妾 내지는 取妾’으로 보았던 것이다.
의빈이 왕녀 이외의 배우자를 얻는 경우에는 그가 士族인지의 여부를 떠나서 모두 妾으로 인정되었다. 의빈의 後娶 중에 士族 출신의 여자들은 자신과 자녀의 嫡室·嫡子로서의 위치를 인정받고자 했지만, 모두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한 점은 의빈 후취 자녀들의 관직 및 혼인 상황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결국, 의빈에게는 王女 이외의 배우자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것은 결국 嫡妾의 분간이 갈수록 분명해지는 당시에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공주나 옹주가 의빈의 유일한 嫡妻라는 지위를 분명히 하는 조처였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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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국문초록
- Ⅰ. 머리말
- Ⅱ. 朝鮮初期儀賓자손의 현황
- Ⅲ. 의빈의 再婚不可및 ‘作妾(取妾)’ 논란
- Ⅳ. 作妾한 의빈 자손에 대한 인식과 처우
- Ⅴ. 맺음말
- 참고문헌
- Abstract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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