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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키워드
이 연구는 조선 인조 대부터 현종 초까지 은거를 선택한 송시열, 송준길, 윤휴, 윤선거, 이유태 등 명유들의 학술적 교류의 시작과 중단의 과정을 검토하였다. 이제까지 송시열과 윤휴를 비롯한 인조 대 명유(名儒)들의 학술적 교류에 대해서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종종 언급하는 경우도 이 관계를 정치적 관계로만 해석하거나, 이들의 학술 교류 자체를 중시하지 않았다. 이들은 스승도 다르고, 같은 교육기관에서 수학한 적도 없으며, 심지어 당색도 달랐지만 장기간에 걸쳐 교류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런 학문적 교류과정에서 윤휴와 송시열 사이에서는 학문적 태도에서 뚜렷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윤휴는 주희의 해석에 대해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반면, 송시열은 주희의 저술과 해석은 수정할 수 없는 절대적 텍스트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런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기해예송 시기까지는 이들 사이에 교류 관계는 유지되었다. 흔히 절교의 이유로 알려진 ‘사문난적’ 시비는 이들의 교류를 중단하게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들의 교류중단은 기해예송 이후 촉발된 남인 세력의 정치적 공격에 기인한 것이었다. 자의대비의 복제 문제가 서인과 남인간의 정치적 권력 투쟁으로 전화하면서, 결국 이들의 관계는 단절로 치달았다. 이들의 교류 사례는 적어도 현종 초기까지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당색이나 학파에 구애되지 않는 교류가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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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요약》
- Ⅰ. 서론
- Ⅱ. 은거 : 교류의 시작
- Ⅲ. 교류의 양상
- Ⅳ. 교류의 중단 : “절교”
- Ⅴ. 결론
- 참고문헌
- 〈Abstr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