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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철학회 철학연구 철학연구 제126집
발행연도
2013.6
수록면
403 - 422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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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師培는 ‘反淸’에서 반전통의 ‘무정부주의’로, 그리고 ‘親淸’으로 변절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中國民約精義』는 劉師培가 무정부운동을 하기 전, 즉 1903년에 완성한 저서다. 1903년은 劉師培가 고향을 떠나 上海에서 反滿 운동을 시작했던 시기이고, 1907년 일본으로 유학가기 전 4년 여동안 劉師培는 反淸 운동에 적극적이었다. 따라서 『中國民約精義』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이념인 ‘反傳統’의 관점에서 저술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中國民約精義』서문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劉師培가 참조한 루소의 『민약론』은 楊廷棟이 일본어판을 보고 중국어로 번역한 『민약론』이다. 둘째, 『민약론』의 내용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셋째, 원고는 1903년 이전에 완성되었고, 책은 1904년에 출판되었다. 劉師培는 『주역』을 통해서는 ‘君民의 一體’를, 『상서』를 통해서는 ‘君民이 국가의 공동주인’임을 밝혔다. 『시』는 ‘民意의 표현’이라고 했으며, 『춘추』를 통해 군주세습제와 民權 그리고 民意에 의해 관료 등용 등을 주장했다. 『논어』를 통해서는 君臣의 대등 관계와 군민의 일체를 다시 강조하고, 『맹자』와 『순자』를 통해 군주가 산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에 民意를 근거로 군주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劉師培의 이러한 주장만 놓고 보면, 중국은 비록 전제군주체제에 있었지만, 사람들은(人民) 민주제도를 향유한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것이 중국이다. 문제는 劉師培의 주장처럼 루소의 『민약론』에 버금가는 사상과 역사적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도화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劉師培가 『中國民約精義』에서 서술한 ‘民約’은 治道 방면과 비슷하다. 그러나 政道 방면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게다가 서술된 ‘민약’의 내용이 한 번도 제도화된 적이 없다는 점에 대해 아무런 언급이 없다. 결국 비록 『中國民約精義』가 중국 전통사상에서 서구의 ‘민주’ 개념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그것을 제도화하지 못하고 또 治道에만 치중해 서술한 점이 『中國民約精義』의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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