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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具致寬은 문과에 급제하여 문신으로 관직에 진출하였으나 군사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하여 議政에 오르고 軍國重事를 담당하였던 인물이다. 그가 이러한 이력을 갖추게 된 데에는 꽤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던 15세기 중엽의 국제정세와 癸酉靖難으로 대표되는 국내의 정치적 변화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특히 조선 관료사회의 분위기는 명과 몽골 사이에 일어난 군사적 충돌을 계기로 일변하였고, 이것은 침체되어 있던 구치관의 관료생활 경력도 일신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구치관의 군사적 이력은 병조낭관 생활에 이어 평안도도체찰사 金宗瑞, 이어서 평안함길도도체찰사 皇甫仁의 종사관이 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그는 불분명한 경위로 首陽大君의 소위 癸酉靖難에 핵심명분을 제공한 이경유를 처형하고 이징옥의 난을 진압하는 데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뒤 구치관은 세조의 군사적 이상이 전개되는 데에 병조참판, 하삼도순찰부사, 평안도절도사, 함길도도체찰사 등을 맡아 일선에서 활동하거나 세조의 곁에서 논의에 참여하면서 크게 기여하였다. 그리고 예종 즉위 후 명의 요구에 따른 西征에 착수하여 鎭西大將軍으로서 큰 공훈을 세울 기회를 맞았으나, 희망은 무산되었다. 세조가 특히 군사 부문에서 독단적으로 정책을 결정하여 시행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과 궁궐 깊은 곳에서 즐겨 의정이나 몇몇 중요한 신하를 내전으로 불러들여 의논하였던 때문에, 구치관이 주요 군사 정책의 입안과 결정에 관여한 내용은 별로 드러나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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