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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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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랑스사학회 프랑스사 연구 프랑스사 연구 제3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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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1407년 11월 23일 오를레앙 공작 루이의 암살을 발단으로 하여 1410년부터 1435년까지 사반세기 동안 지속된 아르마냑파-부르고뉴파 내전은 이 시기 왕족제후들의 야심찬 팽창정책과 권력투쟁, 그리고 그에 따른 국왕 재정을 둘러싼 각축에서 비롯되었다. 중앙의 실권 장악을 위한 두 당파의 투쟁은 발작적인 정치폭력의 악순환을 낳았다. 이 같은 정치폭력 못지않게 이 내전에서 두드러진 점은 다양한 상징과 구호, 선동적 언설을 동원한 치열한 선전전, 이른바 ‘상징과 말의 전투’였다. 왕국의 통합이라는 면에서 하나의 분수령이 된 이 내전은 이와 같이 정치문화의 영역에서 새로운 역동성을 드러냈다. 제후 당파들은 군사력 못지않게 여론의 지지를 필요로 했고, 그래서 상징과 말을 동원한 여론전을 펼치는 동시에 여론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지지자들을 포섭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귀족과 도시 엘리트 계층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에 이르기까지 신분을 가로질러 사람들을 당파의 이름으로 구별하고 서로에게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며 정치적으로 과열된 분위기를 보인 것은 분명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것은 차후 프랑스 왕국에서의 정치적 투쟁이 점점 더 공적 공간과 여론을 둘러싸고 펼쳐질 것임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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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18-926-0018267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