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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민속학회 한국민속학 韓國民俗學 第67輯
발행연도
2018.5
수록면
171 - 192 (22page)
DOI
10.21318/TKF.2018.5.67.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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廖中의『오행정기』는 송나라 때 간행되어 한국으로 전해지고, 그후 중국에서는 유실되었지만 한국에서 보존된 명리서(命理書)이다.『오행정기』는 최근 중국에서 복원되었는데, 간행연도가 분명하고, 인용문헌의 저자와 출처가 분명하며, 수많은 명리서를 참조하여 당시의 명리사상을 엿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은 저작이다.
이 글에서는『오행정기』가 복원된 후 명리사(命理史)에 미친 후래적(後來的) 영향, 특히 서자평이 창시자로 알려진 신법명리학의 태동시기에 대한 학술적 논쟁을 검토하였다. 그간의 논쟁을 살펴보면 대다수의 학자들은 徐子平이라는 인물이 오대말(五代末) 송초(宋初)의 인물이라는 것을 통설로 인정하고 있으며, 반론으로 남송대의 인물로 보는 소수의 학자들도 있었다. 이 두 가지 논점의 차이는 시차상으로 약 300년의 간격이 있으며, 사상적으로는 송학(宋學)이라는 사상적 변혁의 영향을 받았는지가 관건이 되어 명리학사에서는 중요한 문제이다.
徐子平을 오대의 인물로 보는 학자들은 萬民英의『삼명통회(三命通會)』「자평설변(子平說辯)」을 근거로 삼고 있으나, 송대의 인물로 보는 학자들은『삼명통회』「자평설변」는 저자거리의 변설(辨說)을 정리한 戴冠의『탁영정필기(濯纓亭筆記)』의 내용을 그대로 표절하여 학술적 가치가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두 가지 학설의 논쟁점인 서자평의 활동시기는 『오행정기』가 복원되면서 명확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이는『오행정기』가 이 논쟁의 중간시기에 간행되었고, 또 인용문헌을 정확하게 밝혔기 때문이다.『오행정기』는 1196년 간행되었음에도 徐子平과 그의 저서는 언급되지 않았고,『오행정기』내용 중에 徐子平이 주창한 신법명리학의 내용이 전혀 보이지 않은 점들로 보아 徐子平은『오행정기』간행 이후 활동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오행정기』의 복원은 그동안 논란이 되었던 신법명리학의 태동시기를 명확하게 밝혀주었고, 이로써 명리학사(命理學史)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오행정기』의 복원과정
Ⅲ. 신법명리학의 태동시기 논쟁에 관한 고찰
Ⅳ. 결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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