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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희곤 (안동대)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63집
발행연도
2018.8
수록면
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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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이자 안동 임청각의 종손 이상룡의 외아들인 이준형(1875~1942)의 생애와 업적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둔다.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아버지의 위상은 잘 알려지고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이준형의 생애는 거기에 가려져 전혀 주목받지 못했다. 이준형의 생애는 의병에서 계몽운동으로 전환, 만주 지역 한국 독립운동의 바탕과 고난,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무너진 유력 문증의 몰락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준형은 20대 나이에 안동에서 일어난 의병전쟁을 보며 민족문제에 눈을 떴다. 30대 나이에는 아버지가 의병에서 계몽운동으로 전환하자, 이준형도 혁신유림의 대열에 들어서고 協東學校와 대한협회 안동지회에 참가하면서 계몽운동을 폈다. 나라가 망하자 1911년 1월 아버지를 따라 가족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하였고, 이때부터 20년 동안 독립운동 기지를 세우고 항일투쟁을 펴나가는 토대를 구축하였다. 아버지 이상룡이 만주지역 한국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내는 사이에 이준형은 실질적으로 망명지에서 인재 양성, 한인사회의 조직과 운영, 자금 모집과 공급 등에 매달렸다. 그러느라 종택인 임청각을 비롯하여 문중 재산을 처분하는 것도 차종손인 그의 일이었다.
1932년 부친이 서거한 뒤 이준형은 국내로 돌아와서 종손으로서의 임무를 해냈다. 문중의 건물들을 수리하거나 이건하고, 아버지의 글을 모아 정리하였다. 그런데 중앙선 철도가 건설되면서 종택인 임청각이 일부 훼손되고,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를 더 살면 그만큼 치욕만 더 쌓인다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삶은 만주지역 한국 독립운동의 실상과 고난, 이를 버텨낸 역사의 가치를 말해주기에 좋은 사례가 된다.

목차

1. 머리말
2. 청장년기 민족문제 인식과 대응
3. 만주 망명과 독립운동
4. 자금 모집 활동과 고난
5. 환국 이후 임청각 훼손문제와 자정순국
6.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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