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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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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08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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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조선 후기사회에서 鹿菴 權哲身의 천주교 수용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는 星湖 李瀷의 학통을 이을 인물로 주목받고 있었으며 ‘鹿菴系’라는 학파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제자들이 한국천주교회를 창설하고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권철신이 西學이라는 학문적 차원을 넘어 천주교라는 종교 수용에까지 나아 간 데에는 먼저 그의 학문적 성향으로 볼 때 진보적 개혁적 색채가 두드러졌다. 李瀷과 李秉休로 이어지는 학문성향은 경전에 대한 자주적 해석을 통해 스스로 얻는 지식 즉 ‘自得之學’에 바탕을 두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와 함께 ‘知行合一’을 강조하는 陽明學을 수용함으로써 권철신의 학문은 창조적이며 실천적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러한 학문적 성향은 그의 문도들을 이끌고 走魚寺 講學과 같은 모임을 통해 시대적 고민과 함께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권철신을 비롯한 실학자들은 그 시대에 절망하고 있었다. 18세기 말 민중의 의식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지배층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었던 통치력의 부재에 대한 반감, 피폐한 민들의 삶에 대한 성찰로 고민하고 있었다. 권철신은 그 시점에 서양의 과학기술, 서양의 천주교를 병든 시대를 치유할 대안으로 생각하게 된다. 서양의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효율성과 함께 천주교는 종교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新文化 受容 運動’의 측면 또는 ‘補儒’的 차원의 수용을 넘어서는, 천주교 교리를 조선의 지배이념으로 하고 서양의 제도와 과학기술로 나라를 발전시키려는 ‘유교적 한계 극복’ 차원의 천주교를 수용함으로써 백성의 삶을 행복하게 하려는 이상사회를 꿈꾼 것이다. 권철신의 천주교 수용은 종교적 측면과 개혁사상의 차원이 혼재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으며 종교적 측면 보다는 개혁적 측면이 더 강한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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