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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진한 (인천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20호
발행연도
2018.10
수록면
53 - 88 (36page)
DOI
10.22345/kjuh.2018.10.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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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다소 거칠게나마 인천부에 해당하는 지역을 대상으로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지역의 이름난 장소, 즉 명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성립되고 변화하는 과정을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대강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천부의 경우 비류(沸流) 백제가 도읍을 정한 미추홀 고성이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문학산’과 서해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능허대’가 지역의 중요 장소로 인식되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19세기 동아시아의 급격한 대외정세의 변화 속에서 주안면에 위치한 왜산교가 왜군을 물리친 역사적 장소이자 대외항쟁에 관한 기억의 터로서 새롭게 ‘고적’ 항목에 포함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이 같은 전통적인 장소인식은 『인천부읍지』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개항이라는 급격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향을 보였다.
한편 일제의 강제병합 이후 관광과 시구개정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월미도와 축항, 일본인 거류지는 사진엽서점, 신문사 등의 미디어를 통해 지역의 명소로 부각되었다. 명소에 관한 이미지를 생산하고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에 관여했던 사진엽서점, 신문사는 구성원들로 하여금 근대적이고 관광지화된 특정 장소를 명소로 인식하게 만드는 한편 명소의 대중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장소를 바라보는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시선 차이는 ‘인천팔경’과 ‘인천명소시리즈’에서 확인했듯이 근대에 대한 욕망과 관광에 대한 소비로 수렴되어 갔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지도와 읍지를 통해 본 인천부의 주요 ‘고적(古跡)’
Ⅲ. ‘팔경(八景)’의 선정과 장소변용
Ⅳ. 사진엽서의 유행과 ‘명소(名所)’의 성립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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