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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태우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서울학연구 서울학연구 제73호
발행연도
2018.11
수록면
37 - 79 (43page)
DOI
10.17647/jss.2018.11.7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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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조선시대 국행 의례의 개편 과정과 이에 따른 제단의 변화, 특히 한강 유역에서 행해졌던 국가 의례와 그 제단들의 위치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알게 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조선시대에는 초기에 사전이 정비되었지만 수차례의 개편을 거치면서 제단들의 위계와 규모, 그리고 위치가 변하였다. 제단에 따라서는 일찍부터 폐지된 경우도 있지만 오랫동안 존치되었거나 후대에 복설된 경우도 있었다.
다음으로, 한강 유역의 국행 의례 제장 중에 몇몇 지역은 비정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즉, 대사에 속한 원단이 이후 남단으로 불렸고 여기에는 풍운뇌우단이 설치되었다. 따라서 원단과 풍운뇌우단, 남단이 동일한 제장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이 위치는 용산기지 내 석물 유구 인근일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다. 또한, 중사인 악·해·독의 한강단은 용단이라고도 하며 그 위치는 한남동의 용단마을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우사단은 동교와 남교에 있었는데 남교에 있었던 경우는 보광동 우사단마을 인근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영성단 역시 동교와 남교에 있었는데 동교에 있었던 경우는 현재 표지석이 설치된 성북동으로 추정되지만 현재로서는 그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남교에 있었다는 영성단 역시 그 정확한 위치를 알기는 어렵고 따라서 한남동의 용단마을에 설치된 영성단 표지석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소사에 속하는 명산대천단 중에 양진에 있었던 양진당은 광장동에 있었던 용당산의 용당이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다음으로, 사전에는 편제되지 않았지만 국행 기우제를 지냈던 곳으로 오방토룡단과 용산강, 저자도 등이 있었다. 오방토룡단 중에 남방토룡단은 한강단을 활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용산강에 있었던 기우제당으로는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이촌동에 있었던 용궁당을, 저자도에 있었던 기우제당으로는 수신사의 존재를 제기해 보았다.

목차

Ⅰ. 서론
Ⅱ. 조선시대 국행 의례의 정비와 개편
Ⅲ. 한강 유역 사전의 제단과 변화
Ⅳ. 한강 유역 기우제와 장소
Ⅴ. 결론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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