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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은정 (홍익대)
저널정보
돈암어문학회 돈암어문학 돈암어문학 제34집
발행연도
2018.12
수록면
39 - 72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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丹陽·堤川·淸風·永春을 아우르는 四郡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니고 있어서 17세기에 이르면 ‘四郡山水’가 일반화 된다. 이보다 앞서 사군의 명성은 李滉이 丹陽 군수로 재직하면서 여러 장소를 유람하고 〈丹陽山水可遊者續記〉를 남김으로써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儒鄕 丹陽에 儒宗 李滉의 자취가 깃들었기 때문에 많은 문인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한편 사군 중 단양과 더불어 승경으로 이름난 淸風은 17세기 중반 이후 노론 명문가의 엘리트가 부임하는 고을로 인식되었다. 왕비의 貫鄕으로서 읍격이 높아짐에 따라 한가한 공무 가운데 좋은 풍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安東 金門에서는 3대에 걸쳐 청풍을 다스림으로써 고을과 가문의 인연을 쌓아갔다. 특히 農洲 형제는 가까운 주변 인물과 사군유람을 성대히 하였고, 김창흡은 유람의 여정과 감회를 「丹丘日記」의 기문과 여러 편의 한시로 표현하였다.
농연 형제의 한시는 후에 「丹丘錄」으로 엮여 여러 사람들에게 읽힘으로써 사군에 대한 또다른 안내서 역할을 하였다. 김창협의 제자 申靖夏는 이를 여행의 안내서로 삼아 유람하면서 시에 드러난 경물의 핍진성을 확인하였고, 이황보다는 농연 형제를 기리는 태도를 취하였다. 이후 金信謙과 閔遇洙는 공무를 맡지 않은 채 사군 유람을 떠났고, 역시 중부와 스승의 자취에 따라 사군을 유람하였다.

목차

국문 요약
1. 서론
2. 四郡山水 개념의 형성과 역사
3. 四郡과 安東 金門의 인연
4. 農淵형제의 四郡 유람과 영향
5. 결론
참고 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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