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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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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인천학연구 인천학연구 제3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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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이 글에서는 1931년 인천상공회의소에서 발행한 〈인천상공인명록〉을 대상으로 하여 업종별 외형적 파악과 기업 활동의 내면적 분석을 시도했다.
    먼저 외형적 파악의 첫 단계로 인명록 정보 가운데 납부 영업세액을 살펴보았다. 고액 납세업종에 속하는 것은 금융업, 양조업, 정미업, 운수업, 무역업, 거래원업 등이었고, 50원 미만 납세 기업이 압도적 다수인데, 그만큼 규모면에서 소규모 기업이 많았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기업 소재지별로 보면, ‘리’ 단위 지역에서는 조선인 업체수가 일본인 업체수에 비해 5배 정도로 월등히 많다. 특히 외리와 내리가 조선인 기업의 밀집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정’지역에는 ‘리’보다 업체수가 월등히 많고, 또 일본인 업체가 조선인 업체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세 번째로 겸업자를 민족별, 영업 종목수별로 나눠보면, 모두 일본인이 조선인 보다 많다. 그만큼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기업 활동에 적극적이었음을 인지할 수 있다.
    다음은 인천의 대표적 기업인 무역업·정미업·양조업·성냥제조업을 대상으로 심층 분석하였다. 무역업 가운데는 미곡과 면제품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먼저 수이출 부문을 보면, 인천에서 이출된 조선 쌀은 일본 각지로 이송되었다. 다음으로 일본으로부터 이입 중요품 가운데 ‘수입품의 백미’인 면직물을 보면, ‘면사포·마직물류 무역’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이는 이 무역을 통해 858원의 영업세를 납부했다.
    이제 제조업을 보자. 먼저 정미업을 보면, 1930년대 초 인천의 공업별 생산액 중 정미와 현미 등 정미공업의 생산액은 다른 공업에 비해 압도적 위치에 있다. 영업세액 1천원 이상을 납부한 정미 기업 3곳의 영업세액 3천 9백 원이다. 두 번째는 양조업이다. 청주·소주·약주·탁주 등 술 종류 4개의 생산액은 190여만 원이다. 여기에 장유와 미소의 백여만 원을 더하면 양조업 생산액은 약 3백만 원이다. 조일양조주식회사와 野田장유주식회사 인천공장의 영업세액은 각각 1427.95원과 398.5원이다. 세번째는 성냥 제조업인데, 그 생산액은 약 33만원이다. 성냥은 조선인촌주식회사에서 독점 생산한 것으로 이 회사의 1931년 영업세액은 537.14원이다.
    이들 제조업(정미업·성냥제조업)의 기업 활동 이면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고,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자들은 저항하면서 일부는 뜻(요구조건 관철)을 이루고, 또 일부는 해고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일제식민지기 인천지역 기업 활동의 이면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의 희생과 저항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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