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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최인영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도시사학회 도시연구 도시연구 : 역사·사회·문화 제21호
발행연도
2019.4
수록면
37 - 68 (32page)
DOI
10.22345/kjuh.2019.04.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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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벚꽃놀이와 하이킹의 창구로 기능한 경원선 철도 창동역에 대해 살펴본 것이다. 1911년 영업을 시작한 창동역은 봄・가을로 경성의 행락객들이 찾는 철도역이었다.
경원선 철도는 조선시대 경흥로를 활용하여 건설되었다. 경흥로는 동북지방의 두만강 연안으로 이어지는 군사상 중요한 도로였는데 이 도로에는 국가의 교통・통신을 담당한 역과 여행객들의 숙식을 제공하던 원이 있었다. 도성에서 수유리 고개 너머에 있던 누원점은 동북상인과 물산이 모이는 장소였다. 하지만 개항 이후 1896년에 역원제가 폐지되면서 기존의 경흥로는 경원선 철도로 일부 대체되었다.
이 경원선 철도는 원산에서 일본과 러시아의 각 항구까지 항로로 이어졌고, 경성에서 경인선 철도로 서해안의 항구인 인천에 닿아 있었다. 또한 경부선의 대전에서 분기한 호남선을 따라 서남해의 항구인 목포에 간접적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경원선 철도는 동해와 서해를 이어주는 횡단간선철도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1911년 경원선 철도의 용산에서 의정부 구간이 먼저 개통되면서 창동역은 용지면적 3만 평, 건물 3동의 작은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하였다. 당시 창동역은 ‘조선 유일의 관앵명소 우이동’까지 걸어서 1시간 거리에 있었다. 우이동에 식재된 벚나무는 군수물자인 활의 재료로 심어졌다는 설과 우이동에 살던 홍양호가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에게 부탁하여 일본산 벚나무를 심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이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1910년대 경성에서 벚꽃놀이가 가능한 곳은 우이동이 유일했다. 1912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은 우이동의 벚꽃 관앵 임시열차를 남대문역(현 서울역)에서 창동역까지 왕복 운행하였다. 1920년대 들어 경성의 창경원, 남산공원, 장충단에서도 벚꽃놀이가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봄이 되면 우이동 벚꽃은 만발하였고 창동역을 찾는 행락객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1930년대에는 가을철 하이킹을 위한 행락객들이 창동역을 찾았다. 창동역은 북한산 기슭에서 가깝고 동북부의 도봉산과 수락산이 바라보이는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하이킹 코스의 시•종착점이었다. 행락객들은 창동역을 통해 경성의 동북부에 위치한 산들과 연결되었고, 창동역은 이들을 향해 열려 있었다.
이처럼 일제강점기 경성 근교지역에 위치한 경원선 철도의 창동역은 우이동 벚꽃놀이와 도봉산・수락산 등을 찾는 행락객들의 철도역이었다.

목차

I. 머리말
II. 경흥로와 누원점
III. 경원선 철도와 창동역
V.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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