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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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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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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는 벽제관 전투 전후 약 한 달 여 간 벌어진 급격한 정세 변화 속에서 對일 군사작전에 대한 조명 간 의견 불일치와 그에 따른 조선의 對명 전략이 어떤 것이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기 조명 협력의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1593년 1월 명군의 평양성 탈환 및 한양으로의 신속한 남하는 전세를 조명 연합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리는 데 있어 결정적이었다. 약 3주 뒤 벌어진 벽제관 전투 이후 명군은 전세의 악화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게 떠넘기고 한성 진공을 미루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명군으로 변모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승승장구 할 때조차도 명군은 한성 수복과 조선의 국정 정상화를 연계시키는 등 정치적으로 조선 조정을 견제, 압박했고 군량 보급의 문제에서 한계가 노정되는 등 양국 간 협력에 있어 갈등의 소지가 존재했다. 이러한 양상의 전개는 명군이 전쟁 수행에서 ‘같은 편’인 조선을 철저하게 명 중심의 세력 관계에 편입시키고자 비군사적 장치들을 통해서 다양한 긴장 국면을 조성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들에 주목하면서 본고는 벽제관 전투 이후 전선의 교착에 대한 책임 전가 및 회군 등을 통해 패권적 종주권을 행사하려는 명군에 맞서 조선이 對일 군사 협력의 신속한 재개를 위한 외교적 역량을 끌어올린 사실을 살펴본다. 첫 번째 초점은 벽제관 전투 이후 거세지는 명군의 조선책임론에 대해서 조선 조정이 명 조정을 상대로 한성 미수복, 일본군의 재침 가능성, 남병 증파 등 전장의 현황을 알리고 종전 해법에 대한 자국의 목소리를 높여 간 과정이다. 두 번째 초점은 행주대첩 이후 대치 국면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일본군 재침설 및 명 본토 공격설 등의 유포를 통해서 전쟁이 명의 안보를 위한 것임을 역설함으로써 조명 군사 협력을 조선 구원이 아닌 공동방위의 차원에서 새롭게 자리매긴 전략이다. 이러한 접근은 임진왜란 시기 조명 군사 협력이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밀고 당김의 세력 관계 속에서 전개됐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하나의 맥락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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