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온지학회 온지논총 온지논총 제28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87 - 110 (2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薯童謠>는 百濟의 武王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鄕歌이다. 『삼국유사』 奇異편 무왕 조에 기록되어 있는 배경 설화에 보면 어릴 적에 서동으로 불리워졌던 백제의 제 30대 왕인 武王 夫餘 璋이 신라의 수도 서라벌에 들어가서 신라 善花公主의 사랑을 얻기 위해 지어서 부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 奇異편 무왕 조에 기록된 <서동요>의 배경설화와 관련하여 이 사건을 역사적 사실로 보는 견해도 서동설화의 주체를 武王으로 보는 견해 뿐만 아니라 마한 무강왕설, 동성왕설, 무령왕설, 무강왕설, 원효설 등이 있다. 향가 <서동요>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미륵사 창건설화의 주체에 대해서도 선화공주설과 함께 백제인 왕후설이 있으나, 최근에 익산 미륵사지 석탑의 서탑에서 발견된 <사리봉안기>에서 무왕의 왕후가 백제의 귀족 세력인 사택 씨의 딸로 기록된 것을 계기로 국문학계와 역사학계를 막론하고 신라 선화공주 설은 힘을 잃어가고 있다. 특히 미륵사지 서탑의 <사리봉안기> 발견을 계기로 신라 선화공주의 존재를 부인하고 사택왕후가 미륵사 창건을 주도한 것으로 보려는 의견이 쏟아졌지만 오히려 <사리봉안기>에 나오는 사택왕후의 법화신앙은 미륵사 창건의 요인이 된 미륵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써 오히려 미륵사 창건의 주역이 사택왕후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즉 <사리봉안기>를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불교 신앙과 미륵사 창건의 배경, 그리고 무왕과 의자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역사 기록들로 미루어 볼 때 미륵사의 初創은 무왕과 선화공주가 주도했으며, 사택왕후는 무왕 재위 말기 미륵사지 서원과 동원의 창건에 큰 역할을 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서동설화는 역사적인 사실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존했던 인물을 통해 당시 백성들의 꿈을 반영했던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5)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