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철학연구회 동양철학연구 동양철학연구 제72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03 - 236 (34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明末⋅淸初 고증학자들은 考證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고, 이론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통해 현실비판과 제도개혁을 시도했다. 이러한 학술사조의 등장원인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원인’으로 보는 견해, ‘이론 내적요인’으로 보는 견해, ‘漢學과 宋學 논쟁의 한계를 극복한 결과’로 보는 견해, ‘서구 과학기술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대략 4가지 의문을 가지고 청대 고증학의 연원을 검토했다. 첫째, 청대 고증학자들은 왜 文字學⋅音韻學과 같은 小學을 중요시했는가? 둘째, 그들은 애초부터 철학개념에 대한 담론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셋째, 그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학술적 목적은 무엇인가? 넷째, 청대 철학사에서 인식론의 변화는 어떤 방법으로 입증될 수 있는가? 등이다. 본 연구에서 검토한 청대 고증학의 형성과 전개과정에 나타난 특징과 성격은 크게 3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청대 고증학은 宋明理學에 대한 반발로서 經典을 연구하고 先王의 제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經學史의 차원에서만 본다면, 송명이학은 명말⋅청초 시기 그 합법성과 권위를 상실했다. 따라서 청대 고증학자들은 經學의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乾嘉시기에 이르러 戴震과 같이 ‘文字考證’의 방식으로 宋學의 주제를 부활시키거나 아니면 章學誠처럼 역사학의 범위에서 고증의 절대권위를 허물거나 漢代 경학의 가치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경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둘째, 청대 고증학은 先王의 儀式과 制度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역사변화를 중시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청대 경학가들은 三代의 典章制度를 종합하고, 그 理想을 실현하고자 했다. 또한 先王의 禮制와 인간의 욕망을 종합하여 必然과 自然, 理⋅慾의 관계를 내재적으로 연관시켜 욕망긍정론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六經은 모두 歷史’라는 것과 ‘道와 器는 하나’라는 명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宋明理學의 天理와 心性을 비판하여 두 개의 가치를 합일시키는 방식으로 경학연구를 전개했다. 셋째, 청대 고증학은 宋明理學에 내재된 유학의 근본원리인 ‘修己治人’의 合一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등장하게 되었다. 程朱⋅陸王의 핵심개념인 天理⋅心性은 ‘추상적’⋅‘내재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天理를 도덕의 원천으로 생각하는 사유체계에서는 현실비판이 사회개혁으로 연결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현실적 좌절에 직면한 理學家들은 필연적으로 선진유학의 ‘內聖外王’ 원리를 학문방법에 적용하여 내면적 수양과 사회적 실현의 모순관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經學=理學’의 개념으로 정립되어 ‘經學이란 형식이 없이 理學의 목표달성은 불가능하다’라는 관념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후 ‘理學’의 실현방법으로서 ‘經學’이 공인됨에 따라 淸代 중⋅후기에 이르러 고증학적 연구방법은 小學과 文字學 등 다양한 학문분야 발전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8)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