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末 맬서스주의와 신맬서스주의가 소개되면서 “人滿爲患”의 위기의식이 확산되었다. 맬서스주의는 인구문제라는 각도에서 사회문제를 관찰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일부 지식인들은 인구의 ‘수’적 통제와 ‘질’적 관리를 통해서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는 자각을 하게되었다. 때문에 인구의 재생산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개인의 생식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준 사람이 바로 마거릿 생어였다. 즉 마거릿 생어는 산아제한을 통해 인구증가를 억제하고, 특히 빈곤층ㆍ불량유전자의 생식억제를 통해 종족우생을 도모함으로써 가난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사회진화론과 우생학의 기초위에서 맬서스주의와 마거릿 생어의 산아제한론을 받아들였던 중국의 지식인들은 산아제한을 종족개량과 사회개량의 유용한 수단으로 받아들였다.
마거릿 생어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중국에서는 산아제한과 관련된 출판물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學燈』ㆍ『婦女評論』ㆍ『婦女雜誌』ㆍ『家庭研究』 등의 잡지사에서는 산아제한 특집호를 출판하고, 『現代婦女』와 같은 산아제한을 전문적으로 선전하는 잡지도 출판되었다. 그리하여 性과 생식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여론의 장이 마련되었다. 물론 이들 잡지는 서구와 일본의 산아제한 이론을 소개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지만, 종종 혼인문제ㆍ가족제도ㆍ여성해방 등 출산과 연계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논의하여 자유연애와 성의 해방에 심취되어 있던 五ㆍ四 세대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20년대 초ㆍ중반 중국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산아제한에 관한 광범위한 논쟁이 전개되었는데, 그 주된 논의는 모성자결, 新性道德, 인구 억제, 민족개량(우생학)의 4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陳望道와 같은 여성해방론자들은 산아제한을 통하여 여성의 사회ㆍ경제ㆍ신체적 자립을 도모하고자 하였고, 周建人과 같은 이들은 산아제한을 통하여 전통적 성관념을 비판하고 자유연애에 기초한 新性道德을 수립하고자 하였다. 陳長蘅과 같은 인구론자들은 산아제한을 통하여 빈곤해소의 사회개량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였고, 우생학자들은 산아제한을 통하여 종족개량이라고 하는 우생학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중국의 전통적 가족질서ㆍ유교윤리ㆍ성도덕에 근본적인 도전을 제기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孫文의 인구유지를 신봉하는 국가이념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때문에 일부 지식인들은 전통적 젠더질서ㆍ가족주의ㆍ인구증식에 대한 국가적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산아제한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이처럼 1920년대 산아제한 즉 재생산 통제에 대한 논의는 결혼ㆍ성ㆍ젠더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또한 산아제한이 인구ㆍ우생과 같은 문제와 함께 논의되면서 개인과 민족을 어떻게 양립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도 발생하였다. 즉 개인의 생식이 사회적 빈곤 및 민족의 우생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는 인식은 사적인 출산 영역에 대한 사회적 간섭을 정당화시킴으로써, 생식에 대한 公ㆍ私의 분리를 어렵게 했다. 결국 1920년대의 산아제한을 둘러싼 우생학과 인구문제에 관한 논의에는 ‘생식권은 과연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라는 물음, 즉 생식권을 둘러싼 국가와 개인 사이의 상호 모순적 역학관계가 노정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마거릿 생어의 산아제한론의 사상적 영향력 이외에도 도시 소가정의 확산과 가족 기능의 변화, 여성 교육의 보급에 따른 직업여성의 증가, 자유주의와 개인주의 확산 등 다양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출산에 대한 사회적 태도도 점차 변화하기 시작하였다.1920년대 혼인과 가정문제에 관한 다양한 설문조사 속에서 일정한 교육을 받은 도시 청년남녀의 산아제한에 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데, 90%이상의 여성이 산아제한을 찬성하였다. 특히 가정의 행복이나 자녀교육과 같은 목적 이외에, 학교 진학이나 직장 생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산아제한을 원하는 여성들이 증가하였다. 남성의 경우는 산아제한의 찬성률이 77% 이하로 여성 보다 낮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이 출산의 억제에 동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남성의 자녀부양에 대한 경제적 부담이 증가하면서, 경제적 이유에서 자발적으로 피임법에 관한 자문을 구하는 남성들이 증가하는 추세였다. 때문에 도시의 소가정, 특히 일정 정도 교육을 받은 부부를 중심으로 多子多福ㆍ傳宗接代ㆍ不孝有三無後爲大와 같은 가족주의적ㆍ부계혈통 중심의 생육관념이 점차 이완되고, 개별 부부중심의 개인주의적 합리주의적 출산의 경향들이 확산되었다. 이와 같은 출산에 대한 사회적 관념의 변화와 전통적 생육관념의 이완으로 산아제한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지적ㆍ사회적 토양이 점차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