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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93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 - 11 (1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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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의 요지는 전세계 도시(都市) 연구사에서 ‘화하형(華夏型)’ 도시의 기원을 탐구하며, 또한 중세 동아시아 도성(都城) 제도의 계통적인 원류를 밝히고자 함에 있다. 이 ‘화하형’ 도시의 구조는 상당히 규칙적이고, 또한 도시의 설계는 ‘천인(天人)’ 사상을 그 기본 틀로 하였는데, ‘북두(北斗)’를 북단(北端)으로 하여 남북으로 중심선 하나를 그어 전체 도시가 이 중심선을 에워싸고 좌우 대칭이 되도록 건축 설계를 하였다. 그래서 주요 건축물들은 이 중심선의 북쪽 부분에 위치하고 있고, 거리의 구조는 바둑판의 형상을 드러내고 있으며, 외부 성곽(城郭)은 궁궐(宮闕)과 서로 동일한 형태를 그리고 있고, 또한 사방 성문(城門)의 명칭은 사시(四時)에서 따왔다. 그러면 이러한 도성 제도와 특징이 동아시아 각국의 고대 도성에 나타나는 것이 언제쯤이나 형성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최근 백여 년 이래로 중국과 외국 학자들이 대체로 위진(魏晉) 남북조(南北朝) 시기에 나타난 업성(鄴城)에 점점 더 주의를 집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업성은 이미 장하(漳河)의 충적에 의해 지하에 1400여 년이나 매몰되어 있고, 또한 문헌에 보이는 그에 대한 자료도 매우 적고 산재되어 있으며, 더욱이 고고학적 발굴도 현재로서는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그래서 이 업성에 대한 연구는 마치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오랜 시간 동안 중국과 외국의 학술계를 난처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1984년부터 이 업성의 연구에 매진하여 30여 년 동안 이 업성과 관련된 문헌과 문물 자료 등을 광범위하게 수집하면서 다섯 차례나 이 업성 유적지를 탐방하기도 하였다. 더욱이 한국에서 1년간 국제 협력 연구를 수행하면서 여섯 번이나 본서의 원고를 고쳤고, 또한 끊임없이 교정하고 보충하여 이제서야 초보적인 본 연구 성과물을 완성하게 되었다. 본 연구 성과는 업성에 관련된 사료(史料)를 거의 총망라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업성 연구 성과까지 대체로 누락됨이 없이 모두 포괄하였으므로, 최근 몇 십년 이래로 업성 연구에 있어서는 가히 하나의 단계적인 종합 연구 성과물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그리고 본서는 모두 일곱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론과 본론 5장, 결론 및 업성 석각(石刻) 자료를 집록(輯錄)한 부록(附錄) 부분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래서 서론인 ‘업성(鄴城): 중국, 아시아, 세계 도시 연구사 중에서 하나의 수수께끼’에서는 업성과 ‘화하형(華夏型)’ 도시의 기원, 그리고 중국과 외국 학자들의 업성에 대한 고금의 기록 및 기존의 연구 등에 대해 서술하면서, 이 ‘수수께끼’ 연구 주제를 제기하고 또한 이미 소실된 업성의 형태도 복원하여 보았다. 그리고 본론 제1장에서는 진한(秦漢) 시대의 업성을 서술하면서 사료를 조사하여 동한(東漢) 시대 업성의 대체적인 윤곽을 그려 보았다. 그리고 본론 제2장에서는 조위(曹魏) 시대와 서진(西晉) 시대의 업성을 서술하면서 업성의 도성 위치, 업성의 창건, 업성의 도성 제도와 공간 구도, 건축물 배치, 성곽, 궁궐, 성벽과 성문, 삼대(三臺) 및 주요 궁전 등의 건축물과 그 위치상의 방위 등의 내용을 통해 위진(魏晉) 시대 업성의 총체적인 면모를 추정해 보았다. 그러면서 업성의 서북쪽에 있는 삼대(三臺)의 배열이 서남쪽에서 동북쪽으로 약간 경사가 져 있다는 사실을 통해 명청(明淸) 시대 이래로 보이는 전통 문헌의 기록을 반박하였다. 그리고 본론 제3장에서는 16국 시대의 업성의 부흥과 쇠퇴를 서술하면서 중점적으로 후조(後趙)의 업성 중건과 도성 제도 건축물 및 유명 건축물 등을 논증하였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성벽, 성문, 삼대 등의 공사의 재건과 대조(大朝), 내조(內朝), 후궁(後宮), 태자궁 등의 건축물의 새로운 배치와 궁중의 기타 고귀한 건축물들을 소개하였고, 또한 관아, 여항 거리, 성곽 외곽 건축물 등도 함께 살펴 보았다. 그러면서 후조 시대 업성의 모습을 재현하여 업성 도성 제도가 보여주고 있는 천인(天人) 관념과 옛 선인들의 치밀한 구상, 지혜, 정교한 건축 예술 등도 함께 살펴 보았다. 그리고 본론 제4장에서는 북조(北朝) 시대의 업성을 서술하면서 이 업성이 염위(冉魏)의 정국 혼난으로 인해 파괴되어 북위(北魏) 시대에 이르기까지 백여 년에 걸친 쇠락 과정을 살펴 보았다. 북제(北齊)의 고환(高歡)은 업성으로 천도를 하여 업북성(鄴北城)을 복원하면서 업남성(鄴南城)까지 확장 창건하며 남북의 성곽이 서로 이어지게 하였는데, 특히 업북성의 중심선을 기준으로 하여 남쪽으로 뻗어 나가 궁궐과 업남성의 성곽을 배치하였다. 그래서 업성의 기본 구조는 좌우 대칭적이고, 가지런하고 획일적이며, 궁궐과 성곽이 안팍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고, 도로와 블럭은 종횡으로 서로 교차되어 바둑판의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한위(漢魏) 시대의 업북성에서 비롯하여 동위(東魏) 시대와 북제(北齊) 시대의 업남성에 이르면서, 중국 중고(中古) 시대의 도성 제도는 그 기본적인 틀을 형성하였고, 또한 점차 성숙 발전하면서 수당(隋唐) 시대 도성 제도의 큰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로써 3세기에서 6세기 걸쳐 중국의 고대 도성 건축 예술은 최고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본론 제5장에서는 업성과 중세기 동아시아 도성 제도의 체계를 서술하면서 이 업성이 수당(隋唐), 송원(宋元), 명청(明淸) 시대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 중국 고대 도성 제도의 기본 체계를 형성하였음을 고찰해 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고대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의 내왕이나 교류를 통해서 중국의 천인(天人) 관념과 도성 건축 제도를 본따 자국의 전통에 적합한 도성 제도 체계를 나름대로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중국, 한국, 일본의 고대 도성 제도 체계는 다시 중세기 동아시아 도성 제도의 기본 체계로 구축되게 되었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이 업성의 역사적 변천을 서술하면서 당송(唐宋) 시대에서 명청(明淸)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사료를 정리하고, 이 업성이 점차로 소실되어 가는 변화의 과정을 고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록 부분에서는 이 업성과 관련된 석각(石刻) 자료들을 집록(輯錄)하였는데, 동한(東漢) 시대에서 원대(元代)에 이르기까지의 업성과 관련된 각종 비각(碑刻)과 묘지명(墓誌銘) 등을 모두 수록하였다. 그리고 본 연구는 ‘화하형(華夏型)’ 도시 연구의 그 첫 번째 단계적 성과물로써, 앞으로 이어질 후속 연구를 위해 탄탄한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다음에 이어질 후속 연구에서는 이번 연구 성과의 기초 위에 업성과 중세기 동아시아 도성 제도의 체계를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여, 장차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의 고대 도성 제도에 대해 전반적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또한 그와 더불어 남아시아, 서아시아 및 유럽과 미주의 고대 도성 제도와 상호 비교 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이 ‘화하형’ 도시의 원류와 특징을 밝혀 내고, 또한 현대적 도시 건설에도 참고적인 견해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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