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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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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4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435 - 459 (2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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鍾繇(151∼230)는 삼국시대 위나라 서예가로 자는 元常이고, 潁川長杜 사람이다. 그는 재주가 뛰어나고 학식이 연박하여 동한 말에 孝廉·尙書郞·尙書僕射·東武亭侯, 위나라에서 廷尉를 지내면서 定陵侯에 봉해지기도 하였다. 明帝가 즉위하자 벼슬이 太傅에 올라서 鍾太傅라 불렸고, 成侯라는 시호를 받았다. 종요는 당시 유명한 서예가로 동한의 張芝와 더불어 ‘鍾張’, 동진의 王羲之와 더불어 ‘鍾王’이라 불렸다. 종요의 서예사적 공헌과 지위는 첫째가 심미의식의 확립이고, 둘째가 해서의 기본 법칙을 마련한 것이며, 셋째가 예스럽고 질박한 서풍을 창조하여 종요 서예 용필 계통을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삼국시기 이전의 서예는 주로 실용관념으로부터 출발하였으나, 종요가 제시한 ‘流美’는 예술을 가리키는 것이지 결코 실용을 가리킨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명확한 예술 자각의식은 실용서예를 예술서예로 전환시키는 데에 결정적 공헌을 하였다. 서예가 물론 인성을 도야하고 선비정신을 고양시키는 데에 좋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이제는 예술의 경지로 향상시키는 데에도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려면 시대미와 철학적 사고가 깃든 심미사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즉, 법첩과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성과 자신의 개성과 성정이 물씬거리는 작품을 창작하여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통의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점에서 종요의 서예 연구는 이 시대에서도 충분히 현실적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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