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현재 한국과 월남 양국은 물적 교류와 인적 교류 상 아시아에서 매우 중요한 경제적 파트너이며 전략적 동반자 관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리적, 역사적 관계로 근대 이전 한월 양국 간의 교류는 활발하지 못하였다. 특히 조선시대 한국과 월남은 직접적인 교류가 거의 없었다. 때문에 본 논문 주제에 관련된 자료 역시 매우 희소한 편이다. 본문은 주로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나는 조선사행의 보고서를 근거자료로 근대이전 조선의 월남에 대한 인식을 살펴보았다. 본문에서 검토한 결과를 토대로 조선시대 월남에 대한 인식의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시대 한국과 월남 간에는 오늘날처럼 직접 상대국을 오고가는 인적 교류와 물적 교류가 없었다. 때문에 조선의 월남에 대한 정보 혹은 인식은 주로 양국 사신들이 만나는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방법에 있어서는 대체로 한국사신이 중국에서 중국정부로부터 월남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경우, 중국정부가 조선정부에 조서 등을 통해 월남에 대해 알려주는 경우, 한국사신이나 통역관이 중국에서 월남의 사신이나 통역관을 직접 만나 상호 간의 정보를 주고받는 경우 등이 있다.
둘째, 조선시대 월남에 대한 인식의 범위는 월남내부의 큰 정치변동에서부터 대중국 외교정책과 공물내용, 천주교 탄압, 국호 변경, 의관 풍습 등 매우 다양하다. 특히 정치방면에 있어서는 구체적인 인물의 이름과 행적 등과 같이 정보의 내용이 매우 상세하다. 시대는 어느 한 시대에 국한되지 않고 월남의 호(胡) 왕조로부터 후기의 완(阮) 왕조에 이르기까지 근대이전 월남의 각 시대를 망라하고 있다.
셋째, 조선시대 조선은 다른 무엇보다 월남의 정치적 변동과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과 월남정책 및 월남의 대중국 사대정책이나 조공관계 등에 대해 지대한 관심과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조선 역시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 속에서 월남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신의 안위와 존립을 지키고자 하는 관심에서 나타난 현상일 것이다.
넷째, 조선시대 월남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중국을 통해서 얻는 정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때문에 정보의 내용이 객관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중국의 대월남관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로 인해 조선의 월남에 대한 인식 역시 부정확한 면이 있음과 동시에 중국의 월남에 대한 관점이 많이 작용하고 있다.
다섯째, 조선시대 조선은 중국 중심의 아시아 국가 중에서 중국을 제외한 가장 뛰어난 문화국가라는 자부심과 우월감을 지닌 채, 의관 풍습에 나타나는 바와 같이 상대적으로 월남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경시하고 무시하려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다.
요컨대 조선시대 한국은 월남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사신들의 학문교류와 정보교환, 혹은 중국의 조서나 대외발표문 등과 같은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예상외로 월남의 각 상황에 대해 많은 정보를 확보하고 또한 그에 대해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