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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60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165 - 193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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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6세기 왕비가문의 변천과 성격을 무오⋅갑자, 기묘, 을사사화와 선조 즉위 등 중요한 정치 상황에서 본가, 처가, 외가의 친인척들과의 연혼관계 속에서 살펴본 것이다. 중종반정 이후 훈척 가문에서 왕비를 배출하였다. 연산군대 두 차례 사화로 사림들은 화를 입었고, 갑자사화 때는 훈척세력도 적지 않은 화를 입게 되어 심온의 외손들인 박원종 등 훈척세력이 주도하는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배경이 되었다. 그래서 중종대 이후에도 훈척 세력에서 왕비를 배출하고 있었다. 중종대 당시 정현왕후가 대비로 계신가운데, 대비와 같은 파평윤씨 가문에서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와, 문정왕후가 배출되고 있었다. 아울러 이런 분위기에서 세조찬탈 공신인 박강의 손자인 반남박씨 박용의 딸 인성왕후가 인종비로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파평윤씨는 중종대 후반 대윤, 소윤 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대립되다가 을사사화와 문정왕후의 사후 몰락하는 등 훈척 왕비 가문은 밀려나고 있었다. 한편 세종대 심온옥사로 몰락하였던 청송심씨 가문은 세조대 다시 등용되어 청주한씨와 파평윤씨가 주도하는 가운데에서도 성종대 등장한 사림세력과 연계를 가지며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러다 청송심씨는 연산군대 갑자사화로 사림세력과 함께 크게 화를 입었지만 중종반정 이후 사림과 교류하며 다시 성장하였으며, 중종대 후반 대군부인(명종비)을 배출하며 세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명종대 이후 청송심씨는 사림들과 폭넓게 교류하며 사림들의 정계 진출을 돕기도 하고, 그들을 보호하기도 하며 당시를 주도하였다. 이후 사림으로부터 受學한 선조가 즉위한 이후 반남박씨, 연안김씨 등 사림가문에서 왕비를 배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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