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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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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23호
발행연도
2004.1
수록면
63 - 90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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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조선후기의 대표적 山林이자 사상가였던 宋時烈의 정치사상을 朱熹의 정치사상과 연관하여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송시열은 남송의 주희를 존숭하였으며, 그의 사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평가된다. 특히 주자학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사상의 영역에서 朱熹가 당대에 제시하였던 ‘君臣共治’的 요소가 다분하였던 宰相을 중심으로 한 정치형태는, 양상은 조금 바뀌었지만 조선에서 재상정치를 넘어 山林政治의 형태로까지 구현되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주희의 사상을 조선의 현실에서 재구현하려고 노력하였던 송시열이 자리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구체적으로 송시열이 올린 己丑封事와 己酉封事, 奏箚 및 經筵講義 등을 두루 주희의 그것과 비교하여 그의 주장이 주희의 주장과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송시열은 주희 때와 시대와 조건이 매우 유사함을 들어 주희의 주장을 적극 실현하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송시열이 43세 때에 올린 13조항의 己丑封事에는 주희의 己酉擬上封事와 戊申封事에서 많은 항목과 내용이 차용되었다. 그가 파악한 당시 조선의 문제는 국왕의 修身, 權豪家와 같은 중간지배층의 정비와 胥吏의 발호, 貢案의 개정, 호란으로 인한 상처 등이었으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로서 國王과 국왕의 修養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또 송시열이 51세 때에 올린 19조항의 丁酉封事는 주희의 봉사를 직접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국왕의 聖學을 수양할 것과 신하들을 잘 등용하여 이들과 함께 정치를 해 나갈 것을 주문한 내용을 조선의 현실에서 풍부하게 재현하였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封事 이외에도 송시열은 進修堂奏箚(1681, 숙종7)에서 孝宗 이래 끊어진 北伐의 대의를 肅宗에게 천명하고 이 뜻을 이을 것을 요청하였다. 진수당주차에서 지적한 북벌의 대의는 곧 주희가 癸未垂拱奏箚에서 이미 제시한 논리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여기에서 송시열은 천리의 회복을 위해 사욕을 버릴 것을 주문하였던 것이다.이런 문제들은 한편 經筵에서 국왕에게 帝王學을 논하면서 항상 논의되던 주제들이었다. 송시열도 효종 초년부터 경연에서 자주 이와 같은 문제들을 논하였다. 곧 주희가 經筵講義에서 大學을 중심으로 제왕학을 지적하였던 것의 연장이었다. 다만 주희가 경연강의에서 대학의 내용을 해설한 것에 그친 면이 있는 반면에 송시열은 효종대와 현종대, 숙종대까지 경연에서 지속적으로 국왕을 성리학에 입각한 聖學의 세계로 이끄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주희가 못다한 경연강의를 완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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