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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17세기 한국의 예학 성과는 영호남 학자들이 지속적으로 예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며 형성하였던 돈독한 학술 교류가 바탕이 되었다. 그 중심 인물이 김장생(金長生, 1548~1631)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예학자 김장생은 예제를 고증하고 정리하여 한국 예학의 학문적 수준을 크게 높였다. 김장생 예학의 특징은 첫째, 열린 예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사우ㆍ문인들과 함께 예설을 논하였고, 이황(李滉, 1501~1570)ㆍ이황의 문인인 정구(鄭逑, 1543~1620)ㆍ장현광(張顯光, 1554∼1637),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인인 정경세(鄭經世, 1563∼1633) 등 영남 지역 예학자의 예설을 참작하고, 정구ㆍ장현광ㆍ정경세 그리고 그들의 문인과도 예문답을 적극적으로 주고받았다. 둘째, 김장생은 인정(人情)과 합리성에 의거하여 예 형식이나 선배 학자들의 학설에 구애되지 않고 후한 인정으로 예를 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예를 행함에 인정을 중시하면서도 가정의 경제 형편에 따라 합리적으로 예행을 절제하도록 하여 인정이 과불급하게 됨을 경계했다. 한편 김장생은 예학자로서 부친 김계휘(金繼輝, 1526∼1582)와 자식 김집(金集, 1574∼1656)과의 모범적인 인격적 관계를 보여주었다. 조선 선비의 삶과 가정생활에 모범적인 가정상의 핵심은 부자자효(父慈子孝)의 모습인데, 김장생-김집 부자가 보여준 지고의 정성과 인격 관계는 ‘부자자효’의 일반인의 위계적 관계를 넘어 동반적인 ‘상장지익’(相長之益)의 관계로 표현되었다. 김장생-김집 부자는 평생 진실한 학문 태도와 수신하는 인생을 보여주었으며, 이러한 부자동행(父子同行)의 관계는 문인들에게 부자가 서로 도우며 성장하는 ‘지기(知己)’ 관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김장생의 부자상은 한국의 대표적인 부자상이 될 만하다. 이처럼 김장생의 예학은 인간의 어진 인정과 인격을 공유하는 상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었고, 그러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가정의례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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