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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학연구회 불교학연구 불교학연구 제30권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455 - 498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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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개항 이후의 근대에 활약한 경허성우(1846-1912)와 그의 제자 만공월면(1871-1946) 두 선사의 행적에 대하여 근대불교개혁운동의 관점에서 평가를 시도한 글이다. 한국불교사에서 근대는 국가·사회적 격변으로 인하여 외부로부터 불교에 큰 충격을 주었던 시기였다. 또한 조선 초 이후 장기간 지속된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 내부적으로는 활기를 잃어가고 있던 시기였으며, 특히 깨달음을 얻기 위한 불교의 수행전통은 매우 미약해진 상태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경허는 홀로 간화선 수행법을 통하여 깨달음을 이루었으며, 이후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참선법을 확산시키고 정법을 유지하기 위하여 승속을 구분 없이 동참시킨 결사운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영향으로 영호남의 여러 사찰에서 참선을 위한 결사운동이 진행되었다. 경허의 법을 이은 만공은 제자들에 대한 참선지도 외에도 선학원운동 등을 통해 일제강점기에서도 한국불교의 전통적인 수행법을 지키려고 노력하였다. 경허와 만공은 참선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이루는 일만이 정법의 전통을 지키는 최우선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이들을 통해서 힘을 잃었던 간화선 수행법이 다시 복구되고 널리 확산되었으며, 이후 한국불교에서는 이들의 제자들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참선수행 외의 다른 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게 되었다. 경허는 무애행이라는 미명하에 비윤리적 일탈행을 자행하였으며, 만공 역시 승려들에 대한 불교 교육이나 계율 준수 등을 경시함으로써, 승단의 자질저하를 야기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또한 경허는 당시 조선말의 국가적위기상황에서도 극단적인 사회적 무관심으로 일관하였으며, 만공역시 일제강점기 하에서 자주적인 불교종단의 설립이 매우 중대한 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사회·정치적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 인식에 한계를 나타내었다. 경허와 만공의 행적을 근대불교개혁운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은 수행법의 정립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안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으나 교육이나 지계, 불교의 사회적 위상 제고, 불교 자주화등 다른 주요 과제를 경시함으로써 여러 가지 부정적 측면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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