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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불교학연구회 불교학연구 불교학연구 제48권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235 - 256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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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는 탁발족에 의해 세워진 통일왕조이다. 이민족으로서 중국 영역을 통치하는 데에는 정책적으로나 문화방면에 있어 통일된 기준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상 ‘한화정책(漢化政策)이라 한다. 그러나 모든 방면에서 한화정책이 이루어졌는가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지 않았고, 특히 북위불교 발전과 관련지어 본다면 과연 한화정책 속에서 불교가 발전했는가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종교․문화적 배경에서의 한화정책을 재조명하면서 그 속에서 불교가 발전할 수 있었던 요인들을 찾아보았다. 한화정책은 법제에 한해 이루어진 양상이 더 크며 종교와 문화정책에까지 확대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낙양 천도 이전인 평성시기에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폐불(廢佛)을 단순히 불교사원의 거대화라는 측면이나 유불도 삼교의 투쟁이 라는 측면으로 이해하기에 부적합하다. 폐불 직전부터 한화정책의 조짐이 보이며, 이 과정에서 사상과 종교의 통일성을 찾는 데에서 기인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폐불 이후에 불교국가인 우전국(于闐國)과의 교류현황 등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하다. 천도 이후에는 서역과의 교류가 본격화되는데, 이면에는 남제 정벌과 황폐화된 낙양의 재건 등으로 인한 대규모 토목공사로 국가재정이 어려움에 처하면서 서역과의 경제적 교류를 꾀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러한 배경은 낙양을 국제도시로 탈바꿈하게 하였고, 불교는 사상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서역인들을 통합시키고 이들과 밀접한 관련성을 지으면서 발전할 수 있었다. 특히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 보이는 사원들은 신라원과 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었고, 서역승이 직접 건축한 서역풍 사원, 서역과 동일한 사원배치 양식은 낙양에서 경제활동을 하던 서역인들의 문화집합소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한화정책은 한문화로의 동화가 아닌 새로운 생활상을 펼치는 활로개척의 정책이었다는 점, 불교는 서역인과 북위 황실을 연결해주는 접점으로도 그 역할을 다 했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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