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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역사 여성과역사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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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 13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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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사회에서 살았던 정명공주의 삶을 재현하는 방식들은 다양하며, 역사드라마와 책과 같은 대중매체는 그 중 하나이다. 이 글은 그것을 역사적 상상력이라는 관점에서 다룰 것이다. 드라마작가 김이영이 재현한 역사드라마 <화정>의 ‘드라마적 상상력’과 역사학자 신명호의 대중서『화정, 정명공주』에 재현된 ‘학문적 상상력’을 비교하였다. 이를 통해 정명공주와 그녀의 삶에 관한 역사적 상상력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정명공주와 그녀의 삶을 재구성한 두 가지 방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화정’이라는 글씨를 남긴 정명공주가 대중적으로 소비됨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본래 목소리는 왜 들리지 않았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역사드라마 <화정>은 드라마 <이산>과 <동이>를 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김이영 작가의 작품이다. 정명공주에 관한 역사 기록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작가는 역사적 맥락을 기본배경으로 삼아 나머지는 역사적 상상력을 활용하는, 상상적 역사서술방식을 택하고 있다. <화정>은 역사드라마 가운데 퓨전사극이라는 장르에 속한다. 그것은 정치란 무엇인가? 권력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라는 보편적인 질문을 던지고, 17세기 실존인물인 왕실여성 정명공주를 21세기를 사는 한국사회의 시청자들 앞에 호출하여 그녀의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정치적 비중이 커지면서, 드라마 <화정>의 주인공 정명공주는 ‘올바른 정치를 외치는 여성’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드라마가 방영된 시기는 세월호 참사로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 박근혜와 그녀의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던 때였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마 속 정명공주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역사학자 신명호의 책 『화정, 정명공주』는 정명공주의 입장에서 학문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정명공주의 인생을 재현하고자 하였다. 그는 정사의 기록뿐만 아니라 야사로 인식되었던 역사기록들 속에서 실제 정명공주의 삶을 그려내고, 왕실문화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활용하여 17세기 왕실사람들의 낯선 행위들을 현대 독자들에게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사적, 사건사적 역사서술에 치중함으로써 83년이라는 긴 인생을 산 정명공주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마르탱 게르의 귀향(The Return of Martin Guere)』을 통해 16세기 프랑스 농민의 일상적 삶과 사고방식을 미시적으로 재구성한 나탈리 제이먼 데이비스(Natalie Zemon Davis)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과거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보다 풍부한 ‘창작물’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17세기를 산 왕실 여성인 정명공주의 삶에 관한 그의 ‘재현’은 여전히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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