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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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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불교연구 제41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203 - 228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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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인의 선종인식을 고찰하기 위해 신라말 선승 비문에 보이는 찬자의 인식을 정리하여 그 의미를 이해한다. 선승비 건립은 승속제자의 요청으로 국왕이 시호, 탑호, 비문찬술, 비의 건립허락 등으로 이루어졌다. 대개는 선승의 시적 후 건비가 요청되는 데 길게는 30여년 뒤에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는 문도와 세속제자의 활동 및 국왕의 관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비문작성은 당시 문장가에 맡겨졌는데 대개는 도당경험이 있는 자였다. 비문작성자는 문도들이 올리는 행장을 토대로 당시 남겨진 비문을 참고하였다. 국왕의 명을 받은 봉교찬이므로 국왕의 선승 우대에 대한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다. 이러한 부분을 찬자가 의식하면서 선종에 대한 인식을 표현한다. 선승비문을 작성한 김헌정, 최하, 김영, 김원, 최치원 등은 모두 도당경험이 있는데 특히 김영과 최치원은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여 당의 벼슬까지 한 인물이다. 그들은 9세기 초 당시 당에서 유행한 마조선 선풍을 깊이 이해한 바탕에서 비문을 작성하였다. 9세기 초 김헌정이 선을 인식하던 단계는 북종선, 마조선 등을 함께 이해하고 선을 죄업을 씻는 개인공덕으로 보았다. 9세기 말 김영은 선을 무위임운으로 보고 마조선을 확실히 강조하여 생활선으로 인식하였다. 최치원과 경명왕은 신라에서의 마조선 내재화와 보편화를 통하여 나라의 혼란을 극복할 수 있기를 대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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