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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2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85 - 12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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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는 공민왕대에는 순조로운 관료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우왕 원년 외교정책을 놓고 당시의 권력자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다. 결과는 참담하였다. 목숨을 잃은 동료도 있고, 참여했던 대부분이 관직을 잃고 조정에서 쫓겨났다. 이후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정몽주는 관직에서 물러나 있었다. 이 기간 동안 정몽주는 우왕대의 정치현실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하였다. 그 결과로 드러난 것이 이후 그의 정치 활동모습이라고 하겠다. 우왕대 집권세력의 제일 화두는 물론 권력의 공고화였다. 그 다음으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명과의 관계 회복이었다. 명의 사신이 살해당한 이후 명은 고압적인 자세를 견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 조정에서는 꾸준하게 정성으로 사신을 파견하면서 공민왕의 시호(諡號)와 우왕의 왕위 계승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북방 정책은 공민왕대의 실리외교와 명목적인 사대외교를 병행하는 방향으로의 정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연립정권은 정권 유지에 눈이 멀어, 국익은 도외시한 채 일방적으로 명의 요구에 끌려다니고만 있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정몽주는 우선 일본 사행을 성공적으로 완수함으로써 집권자들의 신임을 얻어 관직에 복귀하였다. 그 이후 실타래를 풀어나가기 어려웠던 명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조정에서 요구하면 언제든지 사신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 과정에서 명에게서 ‘세공 감면’을 승낙받고 와서 집권세력의 고민을 덜어주기도 하였다. 정몽주의 이런 외교적 활동은 단순하게 집권세력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당시의 국가 안정과 백성들의 안위를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정몽주는 외교 활동에서 뛰어난 활동을 보이면서 국내 정치에서도 자신의 정치적 지분을 다져나갔다. 그것은 주로 그의 성리학적 소양에 바탕한 관직 활동들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 이외에 특기할만한 사실은 이성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나갔다는 점이다. 생사가 왔다갔다하는 전쟁터에서 그들은 여러 차례 함께 했다. 그런 관계는 정몽주의 정치인으로서 삶에 도움이 되었다. 아울러 그는 적절한 정치적 타협도 했다. 우왕, 최영과의 관계에서 그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아쉬운 점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고 평가받는 당시 집권세력에게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하였다는 것이다. 정몽주는 우왕 원년 잠시 정치적 좌절을 겪은 이후 실속 있는 외교 활동과 활발한 국내 정치활동을 통해 우왕대를 성공적인 정치인으로서 보낼 수 있었다. 그의 그런 활약에도 격변기를 살아간 정치인 정몽주에게 더 바라고 싶었던 것은 첫째,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명과의 외교정책을 보다 실리적으로 운영해나갈 수 있는 대안 제시, 둘째 집권세력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다. 그러나 우왕대 신진사류들 그런 역할을 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정몽주 개인에게만 그런 기대를 한 것은 무리일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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