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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은학회 포은학연구 포은학연구 제10권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221 - 24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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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일정씨 포은 鄭夢周 가문의 가계계승의 난맥과 그에 따른 진통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乾隆元年六月日禮曺立案)>(1736: 鄭夏濟繼後立案)의 분석을 통해 조선후기 계후의 한 양태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데 목적이 있다. 圃隱家門은 숙종 연간에 접어들면서 직계 자손들의 거듭된 단명과 무후가 반목되면서 가세가 크게 위축된 것 같다. 정몽주의 11세손 鄭纘光(1650∼1676)에서 14세손 鄭亮采(1734∼1811)에 이르는 4대 동안 무려 3차례의 출계·입양이 이루어진 점은 17∼18세기 가계계승상의 어려움을 잘 반영하고 있다. 포은가문의 계후에는 계후 대상자의 물색과 선정, 대 국왕 건의, 立案의 발급에 宋時烈․閔鼎重․崔錫鼎․吳命恒․李縡․金在魯․宋寅明 등 서인[노론 및 소론] 기호학파의 중진들이 깊이 개입하고 있음이 특징이었다. 이것은 포은가의 계후가 家的 영역에서 하나의 정치사회적 현안으로 확대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인 동시에 정몽주에 대한 追尊 및 계승의식을 강조함으로써 권력의 기반을 강화하려 했던 서인계, 특히 老論들의 정치적 입장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로 해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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