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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아대학교 석당학술원 석당논총 석당논총 제7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11 - 14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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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지역 조선시대 영진보성은 연해읍성과 더불어 조선시대에 국방체계 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관방유적이다. 이러한 영진보성을 조선전기 뿐만 아니라 조선후기 축조수법으로 보다 세분하여 영진보성의 축조수법을 3단계로 나누었다. 이를 통해서 영진보성 체성부 축조수법은 조선전기인 15세기 초와 조선중기 17세기에는 장방형, 방형의 외벽면석이 사용되었고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사이에는 입수적한 장대석의 외벽면석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체성부 내벽 계단식 축조수법, 사직선 기단 등이 일부 영진보성에서 축조되었으나 대부분의 영진보성은 외벽석축내탁식 축조수법으로 축조되었다. 남해안지역 영진보성에는 국방체계의 변화에 따른 축조수법 및 부대시설 설치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조선시대 후기에도 경상도지역 육군․수군 절도사영에 소속된 영진보성의 축조수법에는 큰 변화를 발견할 수 없다. 다만 수군 통제영이 소재한 통영성의 경우에는 포루의 설치와 성석 크기의 규격화 및 수평기단, 각종 부대시설의 확충, 일부 왜성의 영진보성으로 재사용과 축조수법이 잔존하고 있어 조선 후기에 서양과 명, 일본 등에서 도입된 성곽축조기술에 영향을 받아 축조된 것을 알 수 있다. 그 외 남해안지역 영진보성은 조선전기에 축조된 체성부를 그대로 유지 보수하거나 퇴락한 상태로 방치한 것으로 파악되어 15세기 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남해안지역 영진보성 체성부 축조수법은 일관되게 유지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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