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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초록· 키워드
수령은 군현을 통치하기 위해 국왕이 임명한 관리로, 수령이 가지는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三壇一廟(社稷壇·厲壇·城隍壇·文廟)로 대표되는 군현의 의례를 관장하는 일이었다. 다른 목민서에서는 대체로 수령의 의례적 업무를 다루지 않고 있는 반면에 정약용은 이를 『목민심서』 「예전육조」 ‘제사’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서술하였다. 『목민심서』에 담긴 수령의 의례에 대한 정약용의 주장은 목민관이 가져야 할 통치술의 연장이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정약용은 왕명을 받고 파견된 수령이 의례를 주관할 때 온전히 중앙 정부의 유교적 의례 질서를 구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수령이 주도하는 유교적 의례는 철저하게 시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속에 바탕을 둔 여러 민간 신앙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 18~19세기 조선의 현실이었다. 이에 대해 정약용은 목민관이 의례에 임함에 있어서 공사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야 하고, 의례의 물품 등급은 자신의 신분에 맞게 준비해야 하며, 상황에 알맞게 절검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는 유교적인 의례 사상과 어긋나는 미신적인 부분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수령이 의례를 시행함에 있어 향교의 임원들을 조력자로 삼아야 했는데, 정약용은 이들과의 관계를 공고히 해야 함을 강조하면서도 이들을 제관으로 차정할 때에는 엄중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을 고을 통치의 조력자로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질서 체계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통해 구상했던 군현의례는 수령이 가지고 있는 의례적인 권한을 통해 한 군현에 질서를 세우고 올바른 통치를 유도하려 했던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약용의 총체적인 의례 인식이 家禮(私的 의례)가 아닌 국가 군현의례(公的 의례)에서는 어떻게 실용성과 접목될 수 있었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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