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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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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11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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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안씨 사족 동향을 통하여 조선 전기 정치사의 흐름과 정치세력을 살펴 보았다. 죽산 안씨는 세조대에 안초(安迢)가 공신이 되면서 성종대까지 동지중추부사를 지내는 명문 집안으로 성장하였다. 당시 서거정(徐居正)과도 동갑으로 시를 주고 받을 정도로 막역한 사이였다. 중종 명종대에 안방경(安方慶)에 이르러 홍문관 교리, 승지(承旨) 등 청요직을 거치며 청홍도 관찰사를 지내면서 집안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선조대에는 안방경의 아들 안창(安昶)이 율곡 이이, 우계 성혼의 문하에 들면서 서인의 핵심세력으로 성장하였다. 정여립 모반사건에서는 원종공신이 되고 건저의 사건으로 서인이 밀려나니 같이 밀려났다. 이런 와중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송강 정철 등과 일을 수습하는데 진력한다. 그래서 중국 명나라 장수의 접반사가 되어 전후 처리를 담당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나고 북인이 정권을 장악하니 외직으로 밀려나고 이 마저 탄핵을 당하여 재야로 밀려났다 다시 복직하는 고초를 겪는다. 이런 와중에서도 아들 안홍량(安弘量)이 선조의 서4남 신성군의 외동딸과 혼인을 하여 중앙 정계에 등장하지만 북인의 반대로 여의치 않았다. 그리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외직에 나갔다가 광해군 5년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파직당하고 낙향하여 지내다가 광해군 12년에 졸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아들 안홍중(安弘重)이 폐모론을 반대하고 서인과 협력하여 인조반정을 이루어내어 서인의 중심세력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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