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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55호
발행연도
2006.1
수록면
35 - 6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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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금석문은 기와와 인장 등 단순한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수십만 점에 이르고, 문장을 포함한 30자 이상의 금석문만 들어도 700점 가까이 정리되어 있다. 이시기의 금석문 가운데 절반 이상이 불교와 관련된 高僧碑, 사원의 寺碑, 佛具와 佛像銘 등이다. 규모와 분량, 내용으로 보아 이를 능가할 자료는 없다. 고려 중반부터 관인의 墓誌가 조성되었지만 고려 말에 이르러서야 불교 금석문과 대등한 제작이 시작되었고, 묘지는 땅속에 묻혔던 판석에 불과해 지상에 세운 기념물과는 큰 차이가 있다. 한국중세(10세기~13세기)의 불교금석문은 고려 불교의 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고려는 왕조국가였고 국왕이 통치권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국왕의 능비는 제작된 사례가 간혹 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그리고 국사와 왕사로 책봉된 고승은 상징적으로나마 국왕보다 상위에 존재하였으므로, 왕릉비가 남았더라도 고승이나 사원비보다 규모나 품위가 일부의 금석문보다 높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고려의 금석문은 금문보다 석문이 글자의 분량이나 조형의 예술성으로도 가장 중요하며 현존하는 사례도 많다. 석문 중에서도 땅속에 묻은 묘지와 지상에 세운 비석이 가장 충실하다. 비석은 주로 고승인 국사와 왕사의 부도비인데, 묘지에 비해 수량이 적고 파손된 경우가 많으나 가장 높은 수준의 문학과 조형예술이 담겨 있다. 이보다 수량이 적은 사원비 역시 내용과 형태에서 고승비와 같은 수준을 유지한 사례가 적지 않다. 국사왕사의 부도비와 사원비, 그리고 능비는 고려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금석문으로 고려의 조형예술과 문학성을 대표한다고 하겠다.금석문은 탁본을 이용하여 자료를 한곳으로 모아야 연구가 가능하다. 중요한 금석문은 일일이 탐방하기보다 먼저 탁본을 이용하고 간행하여, 이를 토대로 기초적 연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즉 유적이나 유물의 탁본을 모두 제작하여 판독하고 교감과 주석을 하는 한편, 이미 없어지거나 파손된 금석문의 탁본도 찾아내어 간행할 필요가 있다. 金石淸玩과 大東金石帖은 이를 위한 시범이고, 이를 종합하고 새로 발견된 금석문의 精拓本과 古拓本에서 보충하여 새로운 한국 금석첩을 제작, 간행하는 시도가 요구된다. 또한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방대한 탁본의 사진과 주석과 교감을 전산화하여 간편하게 검색하여 활용하는 시점에 도달하였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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