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27 - 168 (4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이 논문은 20세기 전반기에 있었던 여수지역의 사회 변화와 지역민의 대응을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 시기 지역사회의 변화는 도시화, 공업화로 요약할 수 있는데, 도시화는 대체로 공업화에 따른 현상이었다. 이에 그 시기의 공업화의 양상, 공업화의 배경, 공업화에 따른 변화, 그리고 그 변화를 주도했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어 고찰하였다. 여수지역 공업화의 배경은 1930년 12월에 있었던 광주-여수 간 철도 개통과 여수-시모노세키 간 ‘관려연락선’ 취항이었다. 또 1930년대 여수지역 공업화의 상징은 本田조면공장과 천일고무공장이었다. 여수에 조면공장이 세워지게 된 것은 ‘전조선 굴지의 면화생산지’ 여수의 면화농업과 관련이 있다. 천일고무회사의 공장이 여수에 세워진 것도 직항로를 통해 고무원료를 일본으로부터 직접 들여와 고무제품을 생산하고, 생산된 고무제품은 전남 내륙으로 이어진 철도를 통해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전개된 여수의 공업화는 여수읍의 도시화로 이어졌다. 도시화는 인구의 집중과 증가를 수반했다. 1925년부터 1940년까지 15년간 여수군의 인구는 전남이나 조선전체의 평균인구증가율을 2배 이상 웃도는 비율로 급증했다. 이러한 여수군의 인구증가는 15년간 130%에 이르는 여수읍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서 비롯되었다. 공업화에 따른 또 다른 변화는 도시 기반시설의 정비이다. 이는 도로 개설, 항만 매립, 신시가지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과정이었다. 여수의 공업화와 그에 따른 도시화를 주도한 인물은 여수에서 활동했던 기업인들이었다. 이들 기업인은 토착 조선인, 이주 조선인, 여수거주 일본인, 외래 일본인 등 네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들 네 부류의 기업인들은 여수상공회와 여수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 참여하여 활동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공동보조를 취했다. 여수에서 활동했던 기업인들은 일제의 자문기구 참여를 매개로 식민권력과 긴밀한 유대를 맺고 있었다. 이들 기업인들은 여수의 도시화 과정, 즉 철도 개통, 도로 개설, 항만 매립, 신시가지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 과정에도 진정위원이 되어 일제 권력과 대기업을 상대로 청원 활동을 하거나 여수토지건물주식회사 등을 통한 기업 활동을 하면서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29)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