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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79호
발행연도
2012.1
수록면
147 - 182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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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을 기재한 고대 문헌에서 殷․周 교체기에 箕子朝鮮 조문은 14회라는 많은 회수가 기재되어 있지만, 西周代에는 단 1회도 기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箕子와 朝鮮을 연계시키고 있는 기사들이 역사적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지에 대한 문헌 고증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선 箕子朝鮮說 등장 이전의 기자 전승을 분석해보았는데, 기자 전승의 원형은 기자와 紂王의 대립이었다. 이것이 ‘囚箕子說’ →‘釋箕子說’ → ‘箕子來朝說’ → ‘洪範敎授說’의 순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기자와 조선을 연계시킨 전승이 새로이 추가되어 간다. 󰡔尙書大傳󰡕은 기자를 조선과 연계한 최초의 문헌으로, 前漢 武帝代 伏生의 문도가 스승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저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기자 전승은 󰡔史記󰡕 단계에 ‘麥秀之詩作者說’이, 󰡔漢書󰡕에서는 ‘箕子敎化說’과 ‘犯禁八條' 항목이, 또 󰡔魏略󰡕에서는 ‘朝鮮侯=箕子之後孫說’이, 󰡔三國志󰡕와 󰡔後漢書󰡕에서는 ‘犯禁八條制定說’이, 마지막으로 󰡔隋書󰡕와 󰡔太平寰宇記󰡕에서는‘箕子朝鮮⇒高句麗說’이 새로 등장한다. 이러한 기자 전승이 확대된 역사적 배경은前漢 武帝의 조선 정벌과 樂浪郡의 효율적 통치, 그리고 隋․唐代 고구려 침략시에 침공의 명분을 얻기 위해 필요했던 사상과 역사 방면에서의 조치로 보인다. 따라서 箕子朝鮮說은 해당 전승이 필요했던 시대의 역사적 산물로서 실제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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