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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101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87 - 325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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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텍스트들을 통해 영국인들이 일본의 역사 기록을 표준 지식으로서 받아들인 반면, 한국의 기록에 대해서는 단순히 무지하였거나 강한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진 이들의 그릇된 주장으로 여겨 무시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인들이 신공황후의 삼한정벌론에서 시작되는 일본의 한・일관계사 기록과 인식을 한국의 것보다 편애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영국인의 입장에서 일본 측 자료가 상대적으로 접근이 용이했을 뿐 아니라 더 친숙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역사 인식은 영국인의 인식론적 세계 내 한국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둘째, 19세기 말 일본 역사학자들은 한국의 학자들보다 먼저 서구의 근대 역사 연구 방법을 받아들였다. 이로 인해 일본 측의 서술이 영국 독자들에게 더 읽기 쉽고 객관적인 느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셋째, 일본의 빠른 서구화로 인해 영국인들은 일본에 대해 친밀감을 갖고 있었다. 이에 반해 한국은 부패와 수동성과 같은 ‘아시아적 요소’들을 유지하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졌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역사 서술이 당시 동아시아의 상황을 한국의 내러티브보다 더 잘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청일전쟁의 발발 후에는 영국 사회 내에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영국 언론에서 한・일관계사에 대한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하였다. 당시 영국 언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광범위하게 소개되었던 일본의 전통적 역사 내러티브였다. 더 나아가 고대 한・일관계사에서 비롯된 일본의 설명이 한국의 그것보다 당시 동북아시아 상황을 더 쉽게 설명하는 것으로 보여졌다. 청일전쟁 이전 영국사회 내에 존재하던 한국과 일본 자료 사이의 접근성의 차이는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좁혀지지 못하였다. 더욱이 전쟁을 통해 나타난 일본의 인상적 군사력은 일본을 동북아시아 문명의 대표자로서, 또는 “동방의 영국”으로 위치시켰다. 『日本書紀』에서 기원한 고대 한・일관계사 인식은 일본 중심의 역사적 담론을 형성하게 되고 유럽에 전파되면서, 일본의 합리성에 대한 신뢰로 강화되어 영국을 비롯한 유럽 사회 내에서 확고한 定說로 자리잡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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