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55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221 - 269 (4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1956년 대한방직 설경동 사장의 부정불하와 노동조건의 악화로 인해 발생했던 대구 대한방직 쟁의는 여타의 1950년대 쟁의들과는 다르게 장기간 쟁의를 지속해 결국 노동조합이 승리한 쟁의였다. 쟁의 초기부터 단위 노조 지도부와 노조 조합원 중심으로 쟁의가 진행되었으며 단위 노조 지도부에 대한 노조 조합원의 신뢰가 높았기 때문이다. 대한방직 쟁의의 또 다른 의미는 쟁의 주도자들에 의해 대한노총과는 달리 단위 노조의 대중투쟁을 중시하는 노동조합 상급단체,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결성되었다는 점이다. 전국노협은 노자협조주의 아래 반공과 정권 지지활동만을 벌이고 있던 대한노총과는 달리 단위노조의 자주화·민주화에 대한 지원과 ‘노동조합 본연의 활동’을 강조하였다. 정권과 사측으로부터 독립되어 있으면서 민주적 운영을 통한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 활동을 ‘노동조합 본연의 임무’로 규정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경제적 지위 향상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았던 전국노협은 4·19 혁명으로 인해 열린 공간에서 노조결성 지지, 쟁의 사업장 연대 투쟁, 혁신단체 연대 등의 활동을 벌여 나갔다. 특히 전국노협 결성 당시부터 전국노협의 중심지역이었던 대구·경북 지역의 활동가들은 이와 같은 활동을 활발히 펼쳐 나갔다. 이렇게 볼 때 대한방직 쟁의와 전국노협의 결성 및 활동은 전후 남한의 노동운동이 실현하고자 했던 ‘민주적 노동조합’ 운동의 1950년대적 모습이었다고 생각된다. 전국노협 경북도련이 4·19 시기 주력한 사업이던 제일모직 쟁의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이 쟁의에 동참했던 이들은 박정희 정권 때에도 지역에서 노동자 중심의 변혁정당 운동을 주도해 구속되기도 하였다. 1950년대와 60년 4·19 시기에 노동쟁의에 동참했던 경험이 1960~70년대 변혁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8)

참고문헌 신청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