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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동아시아문화연구 동아시아문화연구 제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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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5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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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국호는 鷄林 외에 徐耶伐, 徐那伐, 徐羅伐, 新羅, 薛羅, 斯盧, 尸羅 등으로 표기되었는데 그 음이 모두 비슷하다. 그 소릿값과 뜻을 캐려면 해당 시기의 중국어로 읽은 뒤 그 구성 음소를 고대국어에 맞추어 재구성해야 한다. 뒷글자 盧[⁑ra], 邪․耶[⁑la], 羅[*lɑ]는 땅을 뜻하는 고대국어 †ra를 표현한 것으로서, 奴[⁑na]와 那[*nɑ]도 마찬가지이다. 앞글자 徐[*zɑ]와 薛[*set]은 고대국어로는 †sa와 †sär로 재구성되므로 薛羅[†särra]는 /†sarra/를, 徐羅伐의 徐羅[†sara]는 †sarra의 중복된 r을 줄여 표현한 것이다. 徐羅伐은 동쪽 땅, 동쪽 벌을 뜻한 말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국호 徐羅伐[†sarapär]은 도읍의 명칭으로도 쓰였고, 신라 향가와 비문의 東原京과 東京은 도읍을 지칭하는 말로 짐작되며, 고대국어에서 †sar은 동쪽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라 건국 주도세력이었던 楊山村 梁部 세력이 경주 西川(閼川)의 동쪽 벌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런데 신라의 영토가 확장되면서 ‘伐’이 국호에 적합지 않자, 국호는 伐을 떼어내어 새로 짓고, 도읍 이름은 徐伐로 분리시켰다. 새 국호로는 예전 음에 충실한 薛羅와 함께, ‘새 땅’을 표현한 新羅도 있었다. †sarra의 †sar는 동(東)과 새[新]의 뜻을 함께 지녔고, 新은 뜻으로도 물론 그렇지만 음으로도 †sar와 유사한 †sir의 표현수단이었다. 漢代에 流音 운미가 사라진 후에 중국과 한반도에서 -l/-r을 입성운 -t나 양성운 -n으로 표현해 왔기 때문이다. 新盧(新羅)[†sirra]는 예전의 동쪽 땅 †sarra와 음이 비슷하면서, ‘새 땅’이라는 의미를 지녔기에 가장 강력한 새 국호로 등장하여 널리 쓰였다. 한편 중국 남부와 교류한 백제, 신라에서는 한자를 강동방음(江東方音)으로 읽었으므로 ‘斯’의 讀音은 †si가 되며, 斯盧․斯羅․尸羅는 모두 †sira로 읽는다. 徐羅[†sara]가 그러했던 것처럼, †sira도 †sirra(新羅)의 중복된 r을 줄여 표기한 것이다. -rr-은 말하기, 듣기 모두 -r-로 구현되기 쉬우므로 斯盧, 斯羅, 尸羅는 물론이고, 新羅도 당시에는 ‘시라’로 읽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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