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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직신학회 한국조직신학논총 한국조직신학논총 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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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왜 인간에게 고난이 오는가? 왜 선한 사람에게도 고통이 오는가?사람들 대부분은 선하고 착한 사람에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닥칠 때 당황해 한다. 하느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선한 사람에게 고통을허용하시는가? 덴마크의 실존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류의 역사가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위치를 데카르트의“나는 생각한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를“나는 싸운다. 고로 내가 존재한다”(I struggle, therefore I am)고 했다. 세상을 괴롭히는 악과 싸우는 것은실존적 결단이라고 보인다. 악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삶에서 악은 회피할 수 없는 단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악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곧장 체념하여 불운의 운명으로 받아드리거나 아니면 종교적 이유로 내세로 도피하여 실존의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또 하나의 그룹은 특히 종교인이나 지식인의 그룹이 그런 경향이 많은데“고난의 의미”를 찾아 스스로 마음을달래고 있다. 여기서 인류 역사에게 임해온 고난, 각 개인에게 찾아오는고통에 대하여 신학적 진술이 요구된다. 여기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악이란 무엇인가? 악은어디서부터 오는가? 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했다. 그러나대부분이 존재와 비존재의 개념 속에서 형이상학적으로 다루어 악의정의와 출처를 밝히는 정도였다. 그들이 밝힌 결과는 인간성 자체에 대한 문제나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생각하여 적용 문제는언제나 다시 그 한계를 드러냈다. 다시 말하면 악의 극복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이다. 여기에 반해20세기 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칼 바르트(Karl Barth)의 악에 대한 통찰은 악의 기원, 악의 정의와 더불어 악의 극복 문제를 신학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필자의 관심은 이 악의 극복에 관심을 집중하고자 한다. 그것은 신학적 고찰이 될 것이다. 악이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항상 부정적으로나타나는 그 무엇이라고 한다면 삶 속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악한 것들을 우리는 경험한다. 악은 인간 밖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도 일어난다. 홍수, 지진, 가뭄, 쓰나미[tsunami) 등이 인간 밖에서 일어나는 악이라면 폭력, 탐욕, 미움, 시기, 질투 등으로 인한 공격성은 인간 안에서 일어나는 악이다. 악이 밖에서 오든 안에서 오든 악은 인간의 삶을 고통과 고난의 시련으로 뿌리 채 흔들어 놓는다. 악은 어디서부터 나왔는가? 창조주가 악을 세상과 함께 만들었는가? 선하신 하느님이 악을 만들 수 없다고 한다면, 그러면 악은 도대체어디서 오는가? 악은 존재하지 않은 것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악은실존적으로 우리의 삶의 한 복판에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악의 존재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존재론적으로 말이다.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악에 대하여논한다는 것이 존재론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여전히 그것은“있는 것”은 있다.“없는 것”은 없다는 일종의‘토톨러’지(tautology)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눈으로 볼 때 이러한 고통과 고난의경험은 진지한 시련이 된다. 이러한 상황은 숨겨진“신에 대한 정의”로신을 묻는 신학적 질문을 제기하게 한다. 인간의 불운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악마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이 둘 다인가? 하느님이 선하시다면 악은 왜 오는가? 죄의 결과가 악인가? 그리고 하느님은악을 멸할 수 없는가? 우리가 만나는 실존적 고난 속에서 하느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이 세계의 악과 선하신 하느님은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도대체 하느님은 왜 악과 고난을 허용하시는가? 신은 존재하는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를 주는가? 역으로 신이 존재하지않는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를 주지 못하는가? 오늘의 현대인은 무신론의 상황이든 혹은 신을 전제하는 유신론의 상황이든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없다면 이러한 질문을 제기할 필요도 없을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드릴 수밖에 없다고 취급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악의 사건을 이 세계의 현실을떠난 추상적 사변에서“하느님의 섭리”라고 쉽게 취급해 버리는 것과는달리 구체적인 악의 현실 속에서 신학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이 악의문제는 전통적 유신론도 해결하지 못했으며, 무신론도 해결할 수 없었다. 기독교의 전통적 신관은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고난을 단지“피상적”으로만 설명해왔을 뿐이다. 이러한 정황에서 악에 대한“신정의“문제, 즉 신정론(theodicy)2)은 기독교 신학의 한 중심 주제가 될 수 있다.“만일 하느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면 악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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