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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한자한문교육학회 漢字漢文敎育 漢字漢文敎育 제1권 제41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71 - 96 (2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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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 勿은 갑골문 (, , 勿)과 (, 勿)을 모두 가리키기도 한다. ‘雜文’을 가리켰던 (, , 勿)과 ‘쏘다’를 가리켰던 (, 勿)은 갑골문 단계에서 형체가 서로 달랐다. (, , 勿)는 卜辭에서 주로 ‘雜文’으로 쓰였다. 字源에 대해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은 쟁기()와 쟁기질을 할 때 나오는 ‘쟁기 밥’을 그려 ‘雜文’을 나타낸다 하고, 다른 하나는 ‘’의 는 칼을, 斜線은 칼로 자른 물건을 나타내어 ‘分割’을 나타낸다고 한다. 전자는 그 방증으로 ()이 部件인 利는 본래 ‘禾+’로, 쟁기로 땅을 갈면 벼에게 이롭기 때문에 ‘이롭다’란 의를 갖게 되었다고 하고, 利가 聲符인 , 黎 등은 아직도 부건 ()의 흔적을 보유하고 있음에서 쟁기와 쟁기 밥을 그린 것이 맞다 한다. 후자는 ‘’는 (分)의 상부 ‘’이 칼로 잘려진 물건을 나타내듯이 分割, 切斷을 나타내는데, 잡다하게 잘려진 것으로부터 雜文이 인신되었다고 한다. 또, 同源 혹은 후치자인 物과 刎이 전적이나 복사에서 ‘베다’란 뜻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본의가 ‘분할’이라 한다. 物은 (, , 勿)과 깊은 관련이 있다. 갑골문에 物이 존재하는가는 아직 쟁론 중인데,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은 ‘’처럼 ‘ + 牛’의 合文만 존재하였다고 한다. 그 반대는 ‘’처럼 엄연히 존재했다고 한다. 전자는 그 방증으로 ‘馬 牡 牝 ’같이, 복사는 ‘ + 牛’로만 존재했다고 한다. (, 勿)은 활을 쏜 뒤 시위가 진동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쏘다’를 나타내었다. 하지만 복사에서는 대부분 부정사로 쓰였다. 그런데 ‘雜文’을 나타내었던 이 西周 金文에 이르러 과 같이 부정사로 쓰이면서 큰 혼란을 겪는다. 말하자면 자신들의 본의 혹은 引伸義와는 상관없이 모두 부정사로 쓰이면서 누가 ‘勿’의 初文인지 헛갈리기 시작하였다. 󰡔甲骨文字詁林󰡕은 標題字에 ( p.2613.)은 ‘勿’로, 은 ‘’로 隸定하였다. (, )은 복사에서 일부 부정사로 쓰였고, 잡색이 본의이며, 部件인 物, 刎 등의 후대 자형과 說文의 ‘勿은 잡색 깃발’의 ‘잡색’을 고려하면, 을 勿로 隸定함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은 부정사용법을 제외하고는 ‘勿’과의 훈고학적 연관성을 찾기 어렵고, ‘() - () - (㢭) - ( 癹) - - 發’과 같이 發로의 연변을 고려하면, 勿로 隸定할 수 있는 漢字學的 합리성을 찾기 어렵다. 잠정적으로 정리하자면 해서 勿은 ()의 연변체이고, 그 본의는 잡색이며(), 자형은 쟁기와 쟁기 밥, 칼과 절단된 물건을 그렸다는 설이 공존한다. ()은 활을 쏘고 난 뒤 시위가 진동하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본의 ‘쏘다’를 나타내었고, 최후 發로 연변 되었다. 이들의 隸定은 은 ‘, ’로 은 ‘’로 구분하기도 하나, 西周金文에서 모두 부정사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다 같이 ‘勿’로 예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은 勿, 은 로 예정함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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