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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16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73 - 111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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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16세기는 유교사상에 입각한 󰡔經國大典󰡕 체제가 완성되고 지방에위치한 향촌사회까지 󰡔朱子家禮󰡕의 보급이 급속하게 확산되는 시점으로 국가와불교계 간의 공식적인 관계가 단절되었던 시기였다. 국가와 불교계의 공식적 관계 단절은 곧 佛事의 제약 뿐 만 아니라 일반적인 사찰 운영에 이르기까지 심각한경제적 어려움을 초래하였다. 이로 인해 16세기 불교조각에서는 왕실인물들의후원에 힘입어 15세기까지 유행하였던 건칠기법과 감입기법이 베풀어진 불상들이 사라지고 나무와 흙을 재료로 조성된 불상들이 증가하는 등 재료와 기법적인측면은 물론 아미타삼존상에서 협시보살상의 재구성이라든지 응진전 석가삼존상및 명부전 지장보살삼존상이 등장하는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났다. 조선 전기 16세기의 불교조각은 조선 전기와 조선 후기 불교조각을 연결하는중간 단계에 해당된다. 특히 수 백점이 현존하는 조선 후기 불교조각을 이해하기위해서는 16세기에 조성된 불교조각의 연구와 이해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현존하는 16세기의 불교조각은 조성연대가 확실한 기년명 불교조각 16건과 같은동시기로 편년되는 무기년명 불교조각 20여건 등 약 40건 정도가 남아 있다. 이는왕실불사가 빈번하게 행해졌던 15세기에 대략 10여점 정도의 기년명 불교조각이현존하는 점과 비교해 볼 때 매우 주목되는 현상이다. 이처럼 16세기 불교사회에서 造像活動이 끊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후원계층과신앙형태의 변화를 능동적으로 수용한 불교사회의 노력에 따른 결과로 파악된다. 당시 불교계는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편으로 왕실인물과 고위 관료계층에偏重되었던 후원계층의 저변을 지방 관리들과 일반 백성들까지 확대하였고, 민간에서 요구되었던 現世求福的인 성격의 토속신앙들까지 불교 안으로 적극 수용하였다. 16세기의 불교조각은 三佛像과 三尊像을 포함하여 응진전 및 명부전의 尊像 등 다양한 도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기에는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널리 유행하였던 비로자나삼불상과 석가여래삼불상을 계승한 작품들이 계속 제작되었으며 응진전 및 명부전에 봉안되는 존상들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반면 16세기에는 전대부터 활발하게 조성되었던 아미타삼존상의 도상 형식이 지장-아미타- 관음에서 대세지-아미타-관음으로 바뀌는 변화기인데 이는 명부신앙 확대와 성행에 따른 지장보살의 존격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더불어 독립된 전각 안에 수 십구의 諸像들과 일괄 조성되는 응진전 삼존상의 등장이라든지 비로자나여래상 및 석가여래상을 주존으로 각각 아미타여래상, 약사여래상이 좌우 협시불로배치되는 三世佛像은 16세기에 이르러 정형화된 도상 형식으로 파악된다. 16세기 불교조각은 대체적으로 세장한 상체비례에 양감이 강조된 신체표현을비롯하여 착의형태와 좌법 등에서 15세기 불상양식과 친연성을 보인다. 이러한경향은 16세기 전반기에 조성된 불교조각들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는데 한 예로치켜 올라간 눈꼬리에 異國的인 인상을 풍기는 상호, 양감이 풍부한 佛身, 정교함과 탄력감이 느껴지는 의습선 및 嵌入․乾漆技法 등 수준 높은 기술력이 사용된전통방식의 제작기법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1550년 이후 조성된 불교조각의 신체에 비해 극도로 왜소해진 머리비례라든지 탄력을 잃고 늘어져 버린 의습선은이전 시기 불상들에서 볼 수 없었던 생소한 모습으로 다소 과장되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러나 16세기 불교조각들은 신체와 의습선에 과감한 생략과 변화를 시도하여 당대만의 고유한 특징을 만들었고 이는 곧 17세기 전반 불교조각의 조성에 일정한 영향을 준 것으로 파악된다. 16세기의 불교조각은 재료와 세부적인 제작기법 등 이전 시기에서 계승된 전통방식을 그대로 답습하지만 전체적인 측면에서는 木造와 塑造佛像의 제작이 크게 증가하는 변화양상을 보인다. 16세기에 이르러 광물질ㆍ옻 등 高價의 비용이소모되는 재료는 감소하는 대신 사찰 주변에서 쉽게 획득할 수 있는 나무ㆍ흙과같은 재료를 사용한 불상의 조성이 증가하는 것은 당시 사찰경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눈동자의 감입기법과 건칠기법은 16세기를 마지막으로 점차 사라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목조와 소조불상의 제작방식과 기술력은 17세기로 傳承되어 임진왜란 이후 막대한 수요를 필요로 했던 戰後 복구사업에 직접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불상의 규모면에서도 5-6m에이르는 대형 소조불상들이 제작되는 경향도 16세기 이후로 보이는 특징적인 모습인데, 이 역시 17세기로 移行되어 조선후기 불교조각의 조성에 직ㆍ간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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