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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42호
발행연도
2011.1
수록면
7 - 36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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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기존 향교지에서는 고려시기 향교가 정식으로 설립된 이후의 내용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전에 대해서는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반도 전역에서 고고학적으로 출토되는 목간과 같은 문자자료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고, 고려이전의 교육제도에 관한 연구도 상당히 진척되었다. 특히 유가경전과 관련된 자료들이 발견됨으로써 고대 동아시아에서 한자의 전파는 물론 유가사상의 전래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교육현황에 대해서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따라서 역대 교육제도 내에서 향교의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조선시대의 ‘鄕校’는 고려 때 중국에서 유입된 ‘鄕學’을 계승하여 지방에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중국의 고대 문헌에서 그 어원을 찾아 볼 수 있다. 문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夏나라에는 ‘가르치다(敎)’라는 의미의 ‘校’, 殷나라에는 ‘기르다(養)’라는 의미의 ‘庠’, 周나라에는 ‘활쏘다(射)’라는 의미의 ‘序’라는 향교가 존재하였고, ‘鄉校’라는 명칭은 『左傳』襄公31年(기원전 542년)조에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향교를 없애려고 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 108년에 漢四郡이 설치되어 한나라의 영향권에 들게 되면서 중국의 교육제도도 한반도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였다. 특히 낙랑지역에서 출토된 『論語』竹簡과 ‘樂浪禮官’이란 와당 및 한나라의 교육제도에 의거하면, 낙랑에 이미 鄕學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 중에서는 고구려가 가장 먼저 중국의 교육제도를 받아들어 중앙에는 太學을 설치하고 지방에는 扃堂을 세웠으며, 유가경전뿐만 아니라 역사서와 자전을 주로 강독하였다. 백제의 학교에 관한 자료가 없고 교육제도에 관한 기록도 간략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고구려와 같이 중앙에는 太學을 설치하여 博士를 두었으며, 중국 남조와 활발히 교류를 하였고 일본의 교육제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신라는 적어도 5-6세기에는 한자사용이 보편화 되었으며, 초기의 교육은 유목문화에 유래된 화랑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점차 당나라와 교류가 빈번해지자 인재를 선발해 당나라에 유학을 보내 선진문화를 받아 들였고, 神文王 2년(682년)에는 당나라의 교육제도를 도입하여 國學을 설립하게 되었다. 이와같이 본고는 선행연구들이 전래문헌에 국한된 한계를 극복하고, 최근 고고학적으로 출토되는 문자자료와 전래문헌을 종합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고려 때 향교가 정식으로 설립되기 이전에도 한반도에 그 명칭과 성격에 차이가 있기는 하였지만 후대의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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