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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29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105 - 139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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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조선시대 역사서인 『治平要覽』의 편찬과 그 목적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치평요람』의 마지막 부분에 실린 「國朝」에 대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사실 『치평요람』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편찬한 유일한 중국역사서임에도 그동안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李佑成이 『치평요람』을 모아 간행하면서 점차적으로 연구자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연구의 초기 단계이므로 『치평요람』의 편찬 배경과 과정, 그리고 목적을 밝히는 것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치평요람』의 내용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면서 『치평요람』이 실제로 추구하던 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 논문을 작성하였다. 조선은 건국 직후 고려시대에 대한 역사서인 『高麗國史』의 편찬을 시작으로, 삼국시대를 다룬 『東國史略』 및 朝鮮王朝實錄의 첫 번째 편인 『太祖實錄』 등을 편찬하였다. 조선에서 이렇게 일찍부터 역사서를 편찬한 것은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조선의 새로운 이념 및 개혁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이 가운데서도 세종이 특히 역사 연구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는 경서가 학문의 근본이라면 역사서는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으로 파악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하여 세종은 집현전 학자들과의 끊임없는 경연을 통하여 유학 및 史書에 대한 이해를 쌓아 갔고, 이것을 바탕으로 세종 대에는 경서에 대한 훈의본과 여러 사서들을 편찬할 수 있었다. 중국과 한국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는 『治平要覽』 또한 이러한 분위기에서 편찬되었다. 1441년(세종 23) 세종은 鄭麟趾에게 『치평요람』을 편찬하도록 하고, 편찬 기간 내내 적극적인 지원을 하였다. 그 결과 『치평요람』은 편찬 4년만인 1445년(세종 27) 150권으로 완성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치평요람』은 周나라부터 明나라까지의 중국 역사와 箕子朝鮮부터 고려까지의 한국 역사를 다루었는데, 특히 다른 국가와의 전쟁 및 새로운 국가가 설립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과 『치평요람』의 편찬자인 정인지가 밝힌 『치평요람』 편찬의 직접적인 목적은 여러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거울삼아 정치를 잘 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선 건국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이 숨어 있었다. 이러한 내용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치평요람』 「국조」이다. 「국조」의 대부분은 李成桂와 관련된 기사로, 이성계의 다양한 활동과 업적 및 품성,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찬양이 실려 있다. 이를 통하여 이성계는 고려 말의 혼란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국할 만한 사람으로 그려졌다. 또한 「국조」는 고려 말의 혼란을 유교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유교적 사회로의 변화를 주장하였다. 마지막으로 『치평요람』은 다른 서적들이 참고하기 쉽게 자료를 모아 놓는 편람서적인 체제로 편찬된 덕분에 「국조」의 이성계 관련 기사들은 조선 중기의 문집 등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 과정에서 『치평요람』은 기사 배치 등을 통해 모든 국가들이 기운이 쇠하면 멸망하고, 그 과정에서 혼란을 수습하며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는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 人倫을 어긋난 것이 아닌 天命이 옮겨 간 것이라는 점을 인식시키려는 목적에 따른 것이었다. 사실 『치평요람』의 연구는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분량이 많은 탓에 기사 및 사론을 직접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본 논문 또한 「국조」만을 파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곧 『치평요람』의 국역 사업이 마무리 되면 많은 이들이 손쉽게 『치평요람』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다양한 연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역사서의 변화라든가 조선시대 국경선에 대한 인식, 정치에서의 역사서 이용 등과 같은 연구들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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