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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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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사학사학회 韓國史學史學報 韓國史學史學報 제29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9 - 35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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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鑴는 주자학의 나라 조선에서 주자학을 어지럽히는 적, 斯文亂賊으로 규정된 학자였다. 그는 주자학을 부정하지 않았지만 ‘古禮’와 ‘六經’을 연구하여 原始儒學의 본연을 찾으려는 ‘古學’에 심취하였다. 그는 ‘고학’을 공부하면서 주자학의 理法的 天이 아닌 인격적 上帝를 만나게 된다. 윤휴가 만난 상제는 인격적 종교성을 갖는 주재자로 인간에 感應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여하는 존재였다. 때문에 천하질서가 어그러진 胡亂과 庚申大饑饉과 같은 ‘재앙’을 멈추기 위해서는 상제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며, 제왕은 상제의 뜻을 실천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윤휴의 상제의 대리자로서의 제왕에 대한 인식은 복제를 둘러싼 논의에서 제왕을 위한 복제로 斬衰三年服을 주장한 데에 잘 드러나 있다. 그가 어머니를 신하로 삼는다[臣母說]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참최삼년복을 주장한 것은 제왕을 상제를 대신하는 至尊으로 인정하는 ‘尊君’의 명분에 입각한 것이었다. 참최삼년복은 혈연적 관계에 구속되지 않는 상제의 명령을 수행하는 지존으로서의 제왕을 인정하는 복제이었다. ‘존군’의 명분과 함께 윤휴가 평생 품었던 마음은 ‘雪恥’였다. 오랑캐로 여겼던 청과 전쟁에서 패배하고 청과 군신관계를 맺어야 하는 현실은 윤휴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윤휴 역시 ‘復讐雪恥’를 다짐하며 과거를 접고 학문에 몰두하였다. 윤휴는 효종 연간에 출사할 기회가 있었지만 山訟에 연루되는 등 사정으로 무산되었다가 숙종 초년 대륙정세의 변화를 上帝가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북벌을 명분으로 출사하였다. 북벌에 대해 당시 조정의 인사들은 미온적으로 생각했지만 윤휴에게 북벌은 天과 감통하는 帝王이 실현해야 하는 국가적 시무였다. 이와 같이 윤휴는 古學 연구에서 주자학의 이념적 天을 대신할 上帝를 재발견하여 유학의 종교성을 회복하고자 하였으며, 상제와 인간이 감응하는 실천적 삶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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