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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전연구학회 韓國古典硏究 韓國古典硏究 제31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85 - 11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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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화훼에 대한 애호(愛好)는 그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문인들의 화훼 애호는 선비 정신을 상징으로 하는 사군자와 파초, 연꽃 등에 한정되었다. 특히 성리학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시대 문인들은 화훼를 곁에 두고 가꾸는 일을 인격수양과 덕성함양의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화훼를 가꾸고 미적 대상으로 감상하는 화훼 취미가 유행하고 화보(花譜)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지만 17세기 초에도 화훼를 기존의 시각과 다르게 바라보는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조선과 명(明)의 외교활동이 활발해지고 외교 일선에 있었던 문인들을 중심으로 화훼 취미가 시작된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이정귀(李廷龜), 허균(許筠), 이수광(李睟光) 등이 연행길에 명에서 화훼를 얻어와 조선에서 키우기도 하고, 명대에 유행했던 유서(類書)와 총서(總書)를 통해 화보를 보면서 명 문인들의 화훼 취미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극히 일부 문인에 한정되긴 했으나 당시 문인들이 화훼를 바라보고 기록하는 것과 다른 현상이다. 조선후기 화훼 취미의 융성은 조선후기 실학의 영향과 함께 명청(明淸)의 다양한 유서(類書)와 총서(叢書)의 유입이 큰 역할을 했겠지만, 그 이전에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명 외교를 통한 직접 체험과 많은 서적 유입으로 몇몇 문인들에 의해 화훼 취미가 시작되었고 이것이 17세기 중후반에 이어지다가 18세기에 이르러 유행했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초 화훼 취미가 비록 몇몇 문인에 한정되어 있긴 하나, 이 소수의 문인은 당시 조선의 문화를 주도하는 핵심 세력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조선과 명이 교류하면서 실시간으로 지식 정보가 전달된 현상으로 의미 있다고 하겠다. 18세기 화훼 취미가 100년 이전의 명대 유행이 조선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 17세기 초 화훼 취미는 조선과 명 두 나라의 실시간 문화 교류의 일면이라는 것으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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