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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41호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1 - 98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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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김성일이 임진왜란 당시 어떤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초유사 또는 경상우감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했고, 그것이 임진왜란의 극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가늠하는데 주안점이 있다. 김성일은 전형적인 퇴계학파 계열의 학자·관료였지만 인간적 성향 및 기질에 있어 조식 및 남명학파와의 친연성이 컸고, 최영경의 신원운동을 주도하는 과정에서는 강우 남명학파권 인사들로부터 상당한 신망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런 바탕 위에서 그는 김면·곽재우·정인홍 등 남명문인이 중심이 된 의병조직을 원만하게 지휘·조율하며 전란에 대응했고, 그 결과로서 호남을 수호하는 바탕을 마련했다. 또한 김성일은 수십년 관료 생활의 과정에서 형성되어 있었던 조정 관료들과의 인적 연계망을 최대한 활용하며 직무를 수행해 나갔다. 류성룡·김우옹·유근·김응남 등 주로 동인계 중진 관료에 집중되어 있었던 관료적 네트워크는 군량의 조달 및 확충에 크게 보탬이 되었다. 결국 김성일은 남명학파와의 사적(私的) 네트워크와 재조 관료들과의 공적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작동시키며 공인으로서의 책무를 충실히 수행했던 것이다. 그가 통신사행에 따른 실보(失報)에도 불구하고 영남재조론(嶺南再造論)의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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