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24호
발행연도
2007.1
수록면
37 - 81 (45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鄭仁弘의 晦退辨斥은 광해군 초에 실현된 五賢從祀에 대응한 것이었다. 오현종사는 선조초 金宏弼, 鄭汝昌, 趙光祖, 李彦迪 등 四賢에 대한 종사 요청을 그 연원으로 하고 있었다. 이 중 이언적은 乙巳士禍 때의 행적으로 인한 혐의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적 성과에 대한 李滉의 평가에 힘입어 종사 논의에 포함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반에서 이황을 포함한 오현종사는 東方의 道統을 설정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선조는 즉위 초 사현종사를 수용하지 않는 대신 이들의 행적을 수집 정리한 國朝儒先錄을 편찬함으로써 이들이 담지한 도통의 구도를 일정하게 인정하였다. 그러나 재위 후반 신하들의 국왕에 대한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화되면서 이언적과 이황을 강도 높게 비판하였고 오현종사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론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광해군은 즉위 초 公論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이려는 정치적 선택에 따라 오현종사를 실행하였다. 정인홍은 이에 대응하여 이언적과 이황의 문묘 종사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회퇴변척은 程朱學이 설정하고 있던 道統論을 조선에 적용시키는 논점에서 전개되는 것이었다. 정인홍은 변척 과정에서 朱子와 관련된 사례를 적극적으로 원용하였다. 주자가 孟子와 顔子를 변론한 것과 陳建이 주자를 변론한 것은 결국 주자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도통의 학문적 실천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이었다. 정인홍은 이를 동방 도통에 적용하면서 학술적 성과보다 도학의 실천적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오현종사 논의에서 김굉필과 조광조는 이러한 기준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편적으로 인식되었지만, 이언적의 경우 정치적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황의 인정에 힘입어 종사될 수 있었다. 이것은 학술과 행적 모두에서 이황에게 集大成의 의의를 부여하는 토대가 되었다. 정인홍은 이러한 구도에 부당함을 느끼고 도학의 실천적 측면에서 도통의 일원적 설정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경학적 측면에서 보면 中庸의 요체를 時中으로 이해하는 데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는 顔子의 은거를 時中의 道에 부합한 것으로 인식하였고, 그 연장에서 曹植의 위상을 규정하였다. 그리고 조식을 조광조와 정여창에 대한 평가와 연결함으로써 出處에 대한 엄격한 평가를 통해 도통이 설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원칙을 통해 이언적과 이황은 時中의 道에 어긋난 사례이며, 따라서 문묘 종사는 부당하다는 결론을 이끌어내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43)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