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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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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33권
발행연도
2014.1
수록면
61 - 8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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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8세기의 퇴계학파는 노론의 학문적이고 정치적인 압박이 본격화됨에 따라, 이에 학파적인 결속을 강화하고 확장해야 하는 시기로 인식하였다. 노론은 퇴계의 호발설을 중심으로 퇴계학설에 대한 비판을 본격화했으며, 영남남인을 회유하는 등 정치적인 입장에서 남인의 노론화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 시대 퇴계학파의 거유인 성호와 대산은 근기남인과 영남남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당대 남인의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퇴계학문을 수호하고 퇴계학파를 결속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율곡학과 퇴계학의 대결구도에서 가장 중심이 되었던 것이 사단칠정론에 대한 시각차였기 때문에, 성호와 대산은 모두 퇴계학의 입장에서 자신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학설을 수립해나간다. 성호는 처음에 󰡔사칠신편󰡕에서 리발일도설을 주장하였지만, 이는 사단이 형기의 매개 없이 발생하는 문제를 갖게 되었기에 다시 숙고의 과정을 거쳐 리발기수일도설로 자신의 학설을 확정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이 바로 식산과 하빈이다. 식산은 우담과 갈암 등 영남유학자들의 학문과 인사들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주었으며, 하빈은 성호가 리발기승일도설에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성호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해석에서 퇴계학문의 올바른 이해와 함께 퇴계학파의 일원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열망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다. 대산은 밀암에게 친히 「태극도설」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기에 그의 사단칠정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분개설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대산은 우담의 이론적 영향 아래 혼륜설에 입각한 분개설을 주장한다. 그의 이론도 성호의 확정된 이론과 마찬가지로 리발기수일도설이라 할 수 있으며, 그에 대한 리기론적 이해는 리주기자였다. 특히 칠포사를 수용하는 것은 율곡학파의 사단칠정론을 부분적으로나마 인정했음을 의미하는데, 이를 통해 대산이 사단칠정론을 대결이 아닌 포용의 기재로써 사용하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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